[김성희 기자의 뒤적뒤적] 남편외조가 영 시원찮다고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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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마님 되는 법
진산 지음, 부키

책을 일러 '마음의 양식'이라 하니 당연히 맛이 있겠습니다. 고소한가 하면 달콤한 내용도 있고, 쓰디쓰거나 매운 글 등 제대로 읽는이만이 느낄 향취와 풍미가 있는 것이 당연합니다.

후텁지근한 여름날 오후, 조각얼음 동동 띄운 레모네이드 맛을 주는 책은 어떨까요? 이 책은 일단 제목부터 심상치 않습니다. 마님은 누군가 마님이라 불러줄 때 존재합니다. 당연히 여기엔 삼돌이나 삼월이, 돌쇠나 영산댁이 있어야 합니다. 섭섭하게도 지은이는 지아비를 삼돌이로 고정출연시킵니다. 그리고 지아비를 삼돌이로 만들어 마님에 이르는 길-지은이는 이를 마도라 합니다-을 설파한 것이 이 책입니다.

남편은 혹은 마누라는 신혼 초 길들이기 나름이라고 속살거린 친구가 많았을 겁니다. 그래서 허니문에서 돌아오자마자 주도권을 놓고 은근히 신경전을 벌인 커플이 적지 않을 겁니다. 진산 마님은 '가사노동 가르치기'에서 남자보다 세 배쯤 게으르면 된다고 강조합니다. 설거지거리가 산처럼 쌓이더라도, 방바닥 먼지에 발자국이 찍힐 지경이라도 버티면 결국 남편이 치우게 될 터이니, 이렇게 해서 길들이라네요.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 인내심이 필수랍니다. 그러니 신부수업 학원 같은 것만 아니라 '남자보다 더 지저분해지는 법 훈련소' '설거지 안한 냄비에 다시 라면 끓여 먹기 특훈 코스' 같은 것이 생겨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발칙하다고요?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동창 누구는 예물로 뭘 받고 누구는 뭘 받고 이런 얘기 하는 친구들이랑은 놀지 말라고, 정도 이상을 꿈꾸느라 자신을 초라하게 만들지 말라는 기특한 말씀도 합니다. 단 물질적 풍요로 결혼생활을 자랑하는 친구들이 '니네 신랑은 잘 해주니?'라고 물을 때 휴대전화를 꺼내 남편에게 "삼돌아, 장작은 다 패 놓았느냐?"고 한마디만 하라는 그 끝이 찝찝하긴 하지만….

그런데 이 책, 제법 화제가 됐습니다. 책이 나온 직후에는 무협소설 작가인 지은이가 여기저기 방송출연도 했답니다. 당시 초점은 당연히 '남편 길들이기' 노하우였겠지만 저는 오히려 '삼돌이 재료 고르기'에 주목합니다. 싫은 것은 분명히 싫다 하는 '각진' 삼돌이가 좋은 삼돌이 재료다, 잘나가는 남편 만나 비단소파에서 살고 싶은 여성은 사모님은 될지언정 마님은 될 수 없다, 거기엔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대목이 씩씩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결혼을 앞둔 선남선녀, 맘에 안 드는 남편의 가슴을 뜨끔하게 해주고 싶은 마님 지망생들에게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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