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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쟁과 대안: 자치경찰제 도입 논란

"주민밀착형 서비스 가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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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정부는 4일 자치경찰법을 입법예고했다. 지방자치를 실시한 지 10년이 된 상황에서 자치 행정의 중요한 부분인 경찰 역시 분권의 개념을 도입해야 한다는 취지로 도입된 것이다. 그러나 일부 학계와 광역자치단체를 중심으로 입법예고된 법안대로는 '무늬만 자치경찰'이 될 수 있다는 등의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들은 현행 국가경찰 시스템을 그대로 둔 상태에서 시.군.구 등 기초자치단체 단위에 자치경찰을 도입하면 자치경찰에 힘이 실리지 않는 등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또 광역자치단체가 자치경찰 체제에서 소외돼 자치행정이 왜곡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반면 정부는 현재의 안정적인 국가경찰 시스템과 주민 생활 중심의 치안 사무를 조화시킨 제도라고 평가하고 있다. 자치경찰제 도입과 관련해 제기된 비판들을 최대한 반영한 법안이라는 것이다. 이번 주 '논쟁과 대안'에서는 입법예고된 자치경찰법의 주요 내용과 그 문제점에 대해 들어봤다. 전문가들은 한국에 맞는 자치 경찰제도는 어떤 모습인지, 자치경찰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어떤 대안이 있는지 진지한 토론을 벌였다.편집자

▶ 지난 4일 본사 회의실에서 열띤 토론을 하고 있는 참석자들. 왼쪽부터 조길형 총경, 양영철 교수, 강치원 원장, 백성운 사무총장, 이황우 교수.오종택 기자

-사회=자치경찰제가 입법예고되면서 광역단위가 맞느냐 기초단위가 맞느냐, 자치경찰이 청원경찰 수준에 불과한 것 아니냐는 등의 논란이 일고 있다. 입법예고된 법안의 취지와 문제점은 무엇인가.

▶양영철=그동안 국가경찰이 사회 치안을 독점했다. 자치경찰제는 지난 수십년간 30여 차례 논의가 있었지만 자치단체 및 정치권의 이해 관계에 의해 실시되지 못했다. 참여정부는 국정과제 12개 중 자치경찰제를 포함시키고 경찰청이 자치경찰 추진팀을 만들어 안을 작성, 대통령 자문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에서 자치경찰 태스크포스(TF)팀을 만들어 자치경찰제 법안을 입법예고하게 됐다. 법안은 자치경찰제를 기초자치단체에서 실시하고 치안을 이원화시켰다는 것이 특징이다. 지역주민과 배제된 상태에서 국가경찰이 독점하는 형태로 이뤄지던 경찰 행정에 보충성의 원칙에 따라 주민밀착형 자치경찰을 도입했다.

▶이황우=기초자치단체 중심의 자치경찰에 문제를 제기하고 싶다. 일본은 1948년 기초자치단체 중심으로 자치경찰을 시작했다가 단위가 너무 세분화하고 책임이 분산돼 경찰 운영이 비효율적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54년 광역자치단체 체제로 개편한 것은 그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주민밀착형이 나름대로 타당성은 있지만 자치경찰제의 완성이라면 광역자치단체에 실시하는 것이 맞다.

▶조길형=자치경찰제는 신뢰와 우려 사이의 고민에서 나온 산물이다. 자치경찰제는 과감하게 도입하자는 주장에서부터 아직 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까지 다양하다. 이런 것들을 모두 반영해 법안을 마련했다.

▶백성운=이번에 도입된 제도가 내세우는 이원화는 광역이 빠져있어 문제다. 우리나라의 자치제도는 중앙-광역-기초로 구성된다. 지금까지 자치경찰제에 대한 논의는 광역단위 자치경찰제였고, 세계적으로 교통.통신의 발달로 잘게 쪼개는 것보다는 광역으로 가는 추세다. 소방서 체계처럼 광역단위의 체계로 가야 한다. 도 단위의 광역자치단체가 경찰의 인사.조직을 지원하고 책임과 의무가 있게 해야 한다.

▶양=자치경찰이 어떤 업무를 하느냐가 중요하다. 기초자치단체가 하는 쓰레기 처리 관련 업무를 도에서 하느냐. 업무 자체는 현장성이 중요한데 현장에서 자기 결정성이 완결되지 못하고 국가-광역 등으로 올라가다 보면 현장 서비스 중심이라는 국가행정의 패러다임을 따르지 못하게 된다. 자치경찰의 업무는 기초자치단체에서 일어나는 기초방범 등의 성격인데 기초자치단체에서 일을 완결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래서 이원적 구조다. 수사 등 전문성이 필요한 것은 국가경찰이 맡고, 단속 업무 등은 자치경찰이 맡는다.

▶백=단속 업무를 기초단체에서 해야 하는 점에는 동의한다. 그렇다고 도 단위의 기능을 완전히 없애버린다는 것은 문제다. 예를 들어 재정이 어려운 군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가 없다. 이 부분을 중앙정부가 세금 등을 지원해 해결한다고 하는데 광역자치단체에서 지원하고 판단하는 것이 더 용이하고 정확하다. 광역자치단체를 배제해선 안 되는 이유다.

▶이=이원화 문제를 얘기했는데 국가경찰 제도를 그대로 두면서 기초단체에 자치경찰을 두는 것은 업무의 중복을 가져온다. 결국 작고 효율적인 정부에 맞지 않는다. 현재의 지구대를 자치경찰로 개편하면 모르지만 국가경찰을 놓아두고 자치경찰을 두는 것은 국민에게 이중적 부담이 된다. 서로 책임을 회피하는 상황이 나올 가능성도 있다.

▶조=자치경찰 논의에서 먼저 목적을 명확히 해둘 필요가 있다. 자치경찰의 목적은 정부의 분권 의지를 실현하고 지역 실정에 적합한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대국민 치안 서비스를 향상하는 것이다. 과거 수십년 동안 자치경찰 얘기가 나왔던 것은 정치적 중립이 가장 중요한 이유였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현재 우리나라 치안 시스템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부녀자들이 마음놓고 밤거리를 다닐 수 있는 나라는 많지 않다. 근본적으로 잘돼 있는 국가경찰 시스템의 근간을 유지하면서 자치경찰을 도입하는 것이다.

▶백=치안 이원화를 어느 정도까지 하느냐가 문제라는 것이다. 국가경찰이 하던 일이 완결적으로 자치경찰로 넘어간 것이 아니다. 단속권은 넘어가도 업무 처리에 있어서 후속적으로 따르는 업무는 국가경찰이 갖고 있다. 단속권은 넘어갔지만 수사권은 없다. 교통단속을 예로 들면 음주운전자는 국가경찰에 넘겨야 한다. 주민들이 자치경찰을 '이빨 빠진 호랑이'로 볼 우려가 있다. 지방자치 행정에서도 조그마한 도시계획에 여전히 건교부 승인을 받게 하는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는데, 경찰도 마찬가지의 길을 걷게 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국가경찰과 자치경찰의 업무 배분에 중복과 혼선이 생길 것이다.

▶조=자치경찰은 명실상부한 경찰 조직이다. 교통.방범.경비 등의 업무에서 처벌.송치할 수 있다. 자치경찰이 곧바로 체포해서 국가경찰에 넘기는데 종이 호랑이라고 본다는 것은 너무 극단적인 것이다. 현재 지구대에서도 순찰 직원이 범인을 잡으면 경찰서 형사계에 넘기고 있다. 그렇다고 지구대 경찰을 경찰로 안 보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

▶양=자치경찰이 맡는 기존 행정기관의 특별사법경찰관 업무는 지역주민의 삶의 질과 관계되는 중요 범죄를 수사하라는 것이다.

▶이=범인을 체포하고 증거를 수집하는 등의 작업이 모두 연장선에 있어서 무 자르 듯하기는 힘들다고 본다. 현행범은 일반 국민도 다 체포할 수 있는데 자치경찰이 현행범을 잡아서 국가경찰에 넘겨준다면 이빨 빠진 호랑이 아닌가.

▶백=자치경찰이 무늬만 경찰이 아니냐는 지적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자치경찰이 국가경찰에 완전히 예속될 수 있다. 국가경찰 조직은 그대로 두면서 시.군.구의 과 단위 조직을 하나 설치한다 해서 과연 그것이 자치경찰이라 할 수 있는가. 주민 생활에 직결되는 부분은 지방에 얼마든지 맡겨도 된다. 치안센터나 지구대 등이 자치경찰에 속해야 하고 광역단체가 이를 지원할 수 있는 여지를 넣어야 한다. 도지사도 도민의 치안 서비스를 받는 문제에 있어서 권한과 책임이 있어야 한다. 또 시.군.구 단위의 자치경찰은 인사 교류에서 한계에 직면할 수 있다. 인사 교류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전횡을 막을 수 없는 문제가 생긴다.

-사회=국민의 생각은 어떻다고 보는가. 자치경찰제 추진 과정에서 어떤 변화가 있었는가.

▶이=자치경찰제를 선택사항으로 했는데 234개 자치단체장 중 '우린 설치하지 않겠다'고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자치단체의 재정상태에 따라 치안의 부익부 빈익빈이 나타날 것이다. 벽촌 등에서 자치경찰대 모집한다고 하면 과연 몇 명이 지원할 것인지, 요즈음 취업이 어렵다고는 하지만 자질이 떨어지는 직원이 채용될 우려가 있다.

▶양=자치경찰제를 선택할 수 있게 한 것은 전체가 획일적으로 지방자치를 도입하던 자치행정의 선례들에 비해 처음으로 도입한 것이다. 치안수요가 지역에 따라 다른 만큼 맞춤형 서비스를 공급해야 한다. 현재의 국가경찰 체제가 낫다고 자치단체가 판단하면 자치경찰제를 하지 않아도 된다. 서울 강남에 과외가 많고 CCTV가 많은 것처럼 지자체에 따라 편차가 생길 것이다. 그러나 치안은 균질하지는 않더라도 뒤처지지 않아야 하는 만큼 국가경찰의 재원 등 지원이 있게 된다. 또 국가경찰 중 상당수가 자치경찰을 지원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백=자치경찰제를 선택할 수 있게 한 것은 찬성한다. 그러나 재원이 허락하지 않아 다른 지역은 하는데 우리 지역은 못한다는 여론 등이 있을 때 상위 지자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을 것이다. 이때 광역자치단체장의 역할을 열어둬야 한다.

▶이=기초단체장이 정당 공천을 받고 있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자칫 자치경찰이 정치 경찰화할 가능성도 있다. 기초단체장의 정치색이 없어야 한다.

▶백=정치적 편향이 생길 수 있다. 자치단체의 장이 선출직이기 때문에 재선을 노리고 단속을 제대로 하지 않는 상황 등을 예상할 수 있다. 광역 단위로 가면 단체장의 부당한 업무집행에서 더 자유로울 수 있다고 본다.

▶조=정치적 편향은 광역.기초의 문제가 아니다. 문제점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해결책이 광역 단위의 자치경찰제가 될 수는 없다.

▶양=자치경찰제를 하면 자치단체장과 경찰이 유착되는 문제가 생긴다고 하지만 경찰 부패는 국가경찰에서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실시하지도 않은 제도에 그런 문제를 접합시키면 곤란하다. 건전한 시민사회의 성장을 믿어야 한다. 과거와 같은 우려는 굉장히 빨리 치유될 것이다.

-사회=입법예고 이후를 전망해 달라. 주민밀착형으로 가기 위해 기초단체 중심으로 하는 것인데.

▶양=9월 2일 공청회를 열고 의견을 듣는다. 이후 국회에 법안이 넘어가면 의원들이 국민의 뜻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될 것이다. 법 도입에 정치적 논리가 있다는 말이 있는데 기초단체 234개 중 144곳 단체장이 한나라당이고, 열린우리당은 30여 군데뿐인 것에서 보듯 자치경찰제는 참여정부의 분권 의지에 따른 것이다. 실시 과정에서 여러 문제점이 있을 수 있다. 앞으로 수정 과정에서 바람직한 자치경찰상이 만들어질 것이다. 광역 단위의 문제는 지원 기능이나 자치단체장끼리의 업무 재배분 과정에서 충분히 개선점이 마련될 것으로 본다.

▶이=국가경찰에서도 최상의 치안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하는데 자치경찰이 명실상부한 최상의 치안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마지못해 분권해야 하니까 자치경찰 하고, 기초단체가 하는 일 중 골치 아픈 것 몇 개만 떼어내 한다는 식은 곤란하다. 고객 만족의 치안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핵심적 목표를 세워야 한다. 앞으로 10개 지역에서 시범 실시할 텐데 치안은 실험의 대상이 아니다. 완벽한 틀이 이뤄져 실시돼야 한다. 그런 면에서 지금의 자치경찰은 수정될 부분이 많다.

▶조=법안 참여자로서 완벽하다고 생각지는 않지만 우려와 신뢰.기대 속에서 조화를 이뤘다고 생각한다. 이번 토론을 계기로 국민의 활발한 참여와 토론이 있었으면 좋겠다.

▶백=국민은 자치경찰제의 쟁점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기존의 국가경찰을 지구대까지 현행대로 두면서 시.군.구에 경찰의 보조적 역할을 하도록 하는 자치경찰을 두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입장이다. 앞으로 입법예고 기간 중 현 법안에서 어떤 조항을 어떻게 고치면 좋겠다는 부분을 제시토록 하겠다.

▶양=현재 검찰과 경찰의 분권 문제가 논란이 되는 것처럼 권한의 배분과 역할 변화는 현재 진행 중이다. 자치경찰 역시 이 같은 권한의 배분과 분권의 논리 속에서 자리 잡아 가는 과정의 하나라는 점을 이해해줬으면 한다.

정리=김승현 기자 <shyun@joongang.co.kr>
사진=오종택 기자 <jongtak@joongang.co.kr>

입법예고된 자치경찰제는

▶창설=시.군.구 조례로 자치경찰대 창설하거나 폐지(선택적 실시)

▶자치경찰대장=자치총경 또는 자치경감의 경력직 경찰관, 단체장 필요 시 외부 전문가 영입

▶사무=방범 순찰, 사회적 약자 보호, 교통소통.관리, 행사 경비와 현 자치단체가 하고 있는 식품.위생.환경 등 17종의 특별사법경찰 사무

▶국가경찰과 협력=시.도에 치안행정위원회, 시.군.구에 지역치안협의회 설치

▶무기 휴대=지방경찰청장의 승인을 얻어 휴대

▶범죄 처리=일반 범죄 발견 시 국가경찰에 인계, 현행범은 체포.인계

▶제복=국가경찰과 구별

▶교육=임용시험 및 교육훈련은 국가경찰에 위탁 실시

<참석자>
양영철 지방자치경찰특별위
원회 위원장·제주대
교수(법학)
조길형 행정자치부 자치경찰제
실무추진단 제도팀장·
경찰청 총경(파견근무)
백성운 전국시·도지사협의회
사무총장
이황우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사회 : 강치원 원탁토론아카
데미 원장·강원대 교수(사학)
▶일시 : 8월 4일 오후 2시30분
▶장소 : 중앙일보사 6층 회의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