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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이어 이란도 핵 '벼랑 끝 전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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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이란 핵 사태가 벼랑 끝으로 치닫고 있다. 이란은 영국.독일.프랑스 등 유럽연합(EU) 3개국이 5일 제시한 '핵개발 중단 보상 제안서'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유럽과 국제사회는 이란이 핵 활동을 재개하면 유엔의 제재가 불가피하다고 위협했다. 이란 핵문제를 다루기 위해 9일 긴급 소집되는 국제원자력기구(IAEA) 특별이사회에 국제사회의 눈과 귀가 쏠리고 있다.

◆ "기대 이하의 제안"=하미드 레자 아세피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6일 국영 라디오를 통해 "유럽의 제안은 이란이 기대했던 최소한의 수준에도 못 미치며 파리협약에도 위배된다"며 수용을 거부했다. 이란은 지난해 11월 22일 EU 3개국과 충분한 보상을 조건으로 우라늄 농축 활동을 중단한다는 내용의 파리협약을 맺었다.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신임 대통령은 6일 취임 연설에서 "이란은 국제 규정을 존중하겠지만 어떤 나라의 압력에도 굴복하지는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란은 원자로용 연료 생산을 위한 우라늄 농축은 핵확산금지조약(NPT)이 보장하는 평화적 핵개발 권리의 하나라며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반면 유럽은 우라늄의 농축.재처리 같은 핵 활동은 핵무기 개발로 이어질 소지가 있어 모두 포기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란의 우라늄 농축을 허용할 경우 북한 등 다른 나라의 요구를 거부할 명분이 없기 때문이다.

유럽의 이번 제안서도 핵에너지의 평화적 사용권은 인정하되 우라늄 농축은 안 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란은 겉으로는 우라늄 농축을 중단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지만 실제로는 농축을 포기하는 대가로 더 많은 보상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 위험한 외교=현재로선 미국의 입김을 받고 있는 EU나 보상 제안을 수용하지 않고 있는 이란이 핵 사태를 풀 만한 극적인 돌파구를 마련하기 어렵다는 게 대체적 분석이다.

유럽의 제안서에는 보상보다는 제한 규정이 더 많이 담겨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NPT에서 탈퇴해서도 안 되고, IAEA의 불시사찰도 수용해야 하고, 핵 연료의 반입과 핵 폐기물의 파기도 국제사회에 의존해야 한다. 이란의 정치분석가인 파르비즈 바르자반드 박사는 "이란은 앞으로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포함해 보다 포괄적이고 구체적인 보상 조치를 염두에 두고 위험한 외교를 계속 벌여나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의 경제제재,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저지, 군사적 위협 등에서 벗어나는 것이 이란의 궁극적 목표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 협상 가능성은 남아=이란이 그동안 위협한 대로 핵 활동을 재개할 경우 유럽의 대응은 불 보듯 뻔하다. IAEA의 의결을 거쳐 이란 핵문제를 유엔 안보리에 회부할 가능성이 크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외교적 해결이 우선돼야 하지만 어떠한 조치도 배제할 수 없다"며 군사적 수단 동원 가능성도 열어놓고 있다. 거부권을 가진 중국과 러시아의 태도는 명확하지 않다. 중국은 이란에서 석유를 수입하고 있으며 러시아는 이란의 핵 발전소 건설을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협상이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심각한 경제난 타개를 원하는 이란의 신임 대통령이 서구와의 극한적 대립은 피하고 싶어할 거라는 분석이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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