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리의 잠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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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서울시내 일부 구청의 부정혐의 사건에 이어 국정교과서 간부들의 수뢰혐의사건은 적지않은 충격을 던지고 있다. 깨끗한 정부, 밝은 사회의 건설은 바로 제5공화국의 국정지표이다.
시청직원들은 건축허가를 내줄 수 없는 땅에 건축을 허가했거나 연립주택 허가조로 뇌물을 받은 혐의로 경찰이 수사에 나서자 자리를 비우고 도피하는 추태까지 보였다. 국정교과서 부정혐의사건은 당사자들에 의해 「뇌물」이 아닌 단순한 「사례비」였다는 강변까지 나오고 있다.
사건의 진상은 수사가 진전됨에 따라 밝혀지겠으나 아직도 우리사회의 부조리는 이처럼 잠복하고 있었음을 실감하게 하는 사건들이다.
공직자의 부정은 누차 지적됐지만 우선 국민의 신뢰를 배반했다는 데서 문제가 크다. 공직자는 국민의 권한을 위임받은 국가의 공복이며 청렴생활의 의무를 지니고 있다. 공직자가 위임받은 권한을 남용해서 부정을 저지르면 일어탁수격으로 사회전체가 오염됨은 과거에도 수없이 보아왔다.
그래서 공직자는 깨끗한 생활을 하자고 누구보다도 앞서 엄숙한 선서를 하게 됐으며 의식개혁운동에 있어서도 그들이 솔선수범하게 된 것이다.
제5공화국의 열화같은 청렴의지는 공직자 윤리법을 제정하는 데까지 이르렀으며 이것은 고위공직자들의 재산등록을 규정하고 있다. 한때 이 재산등록을 연기한다는 소리가 정부 일각에서 나와 국민들은 잠시나마 의아했었다.
공직자들이 부정을 멀리 하는 일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개인의 노력은 물론 사회전체의 분위기가 또 그렇게 돼야한다. 그러나 개인은 사회분위기를 탓하고 사회는 개인을 탓하는 책임전가의 논리로는 부정부패가 사라질 수 없다. 사회 어느 한 분야라도 깨끗해져야 그 분위기가 점차 확산되는 것이다. 이 점에서 공직자들의 청렴자세는 지속적인 운동이 되어야지 한때의 구호로 호도될 수는 없다.
이번에 문제된 연립주택도 거기에 뇌물이 오고갈 성질의 행정업무가 아니었다. 건축허가가 나올 수 없는 땅엔 당연히 건축이 불허돼야 한다. 구조변경이 될수 없는 건물엔 당연히 구조변경허가가 나가지 말아야한다.
이것이 실수요자에게 불편만 주는 법규였다면 공직자들은 법의 개정을 시도했어야 한다. 이런 공직자의 자세가 국민의 발전을 돕는 것이며 이런 법제가 민원의 발생을 미연에 막는 것이다.
특히 최근의 연립주택은 건축의 부실로 말미암아 입주자들에게 큰 피해를 주고 있는 곳이 많은데 과연 건축담당 공무원들이 제대로 지도를 했는지 궁금하다.
또 국정교과서 사건도 윤전기의 성능이 우수해서 비싼 기계를 도입했으면 그것으로 정당한 일이지 왜 금전이 오고갔는지 궁금하다.
더구나 이같은 부정사건이 일본교과서 왜곡사건으로 모처럼 국민의 일체감이 부풀어있을 때 저질러졌다는 점에서 가증스럽다.
이번 사건으로 깨끗한 정부를 건설하겠다는 공직자와 국민의 의지가 다시 한번 확고해지는 계기가 된다면 다행한 일이다. 사실 사회 각분야의 명분없는 사례비는 지금도 횡행하고 있다. 이것을 단순한 미풍양속으로 보아야 하는지는 주는 이와 받는 이의 양심이 결정할 문제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깨끗한 사회를 건설하려는 우리의 발걸음을 한치도 늦출 수 없다는 사실이다. 특히 공직자는 어떤 경우라도 사회의 모범이 되어야하며 그래야만 국민의 신뢰를 받는 정부와 국가가 건설될 것은 자명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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