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버그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한 여인의 생애를 두고 「세기적」이니, 『전설적』이니 하는 수식어를 서슴없이 쓰는 경우는 드문 일이다. 그는 위대한 지도자도 영웅도 아니었다. 여배우「잉그리드 버그먼」.
우선 북구 특유의 수려한 미모로 그는 세계인의 연인이 될 수 있었다. 물론 그의 미모는 마네킹과 같은 그런 미모가 아니었다.
이를테면 아름다운 여인이 갖고 있는 백치의 허전함도, 차가움도 아닌, 어딘지 친근해 보이는 아름다움이었다.
아마 세계의 팬들은 그의 나이가 회갑을 넘어 67세나 되었다는 사실에 놀랄 것이다. 사람들은 배우의 경우 자신이 가장 감명 깊게 보았던 나이에 집착하기 쉽다.
그가 카사블랑카에 출연했던 나이는 27세, 『가스등』은 그 이듬해. 20대의 난숙기에 그는 자랑스럽고 가장 현란한 젊음의 연기를 불살랐다.
「버그먼」은 무슨 영문인지 속됨이 엿보이지 않았다. 지성미라고 하기엔 좀 어색하지만, 비슷한 분위기를 갖고 있었다. 그의 인기가 폭 넓었던 이유도 그런데 있었으리라. 그는 세 번이나 결혼했었고, 그 결혼들은 하나같이 축복보다는 소음이 뒤따랐었다. 그러나 그를 두고 천하고 너절한 여배우라고 혀를 차는 사람은 없었다. 그 독특한 무드 때문일 것이다.
『시간은 짧아요. 나는 그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이죠. 내게 남아있는 시간을 가장 멋지게 살려고 노력해요.』
이 말을 하고 나서 그녀는 몇 년을 더 살지 못했다. 그러나 그 몇 년을 더 살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열심히 살려는 노력의 의지였을지도 모른다.
그의 자서전 『마이 스토리(나의 전기)』에서도「나는 언제나 좀더 나은 연기만을 생각한다. 절대로 포기할 수 없다』고 있다.
그때 이미「버그먼」은 유방암으로 두 번이나 유방절제 수술을 받고 났을 때였다. 「할머니」이긴 하지만, 그런 수술이 특히 배우생활을 하는 그녀에게 준 충격과 실망은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버그먼은 그런 절망을 「더 나은 연기」의 갈망으로 이기고 있었다. 사람에게 마지막 순간까지 희망과 용기를 주는 것은 진지하고 성실하게 사는 마음의 자세다.
「버그먼」은 l915년 스웨덴에서 태어났다. 13세 때 고아가 되었다. 그의 생애는 영화 속에서가 아니면 밝은 면이 별로 없었던 셈이다. 사생활마저도 스캔들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녀, 글쎄 그 순간은 즐거웠을지 모르지만 그것이 오래 계속되진 못했을 것 같다.
하지만 그의 연기생활은 영화인의 노벨상인 아카데미상을 세 번이나 받게 했다.
그가 얼마나 자신의 일에 모든 것을 유감 없이 바쳤는지를 알 수 있다. 그 점에선 그는 누구보다도 행복한 여인이었다.
30일, 공교롭게도 67세를 맞는 생일에 그의 죽음을 들으며 우리는 연인을 잃은 감회에 잠긴다. 67세의 연인을.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