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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그때 그시절 '진학보험'을 아시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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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1958년 한국. 한국전쟁 직후라 서민들은 입에 '풀칠'할 거리를 찾느라 하루 종일 일에 매달려야 했다. 당시 부모들 대부분은 그런 한계상황에서도 "나는 굶어도 자식만은 학교에 보낸다"는 각오를 다졌다. 바로 그해, 대한교육보험(옛 교보생명)이 세계에서 처음 선보인 '진학보험'은 이런 시대상을 반영한 것이었다. 어떻게든 자녀 교육은 시킨다는 한국 부모의 '교육열'이 세계 최초의 보험 상품을 탄생케 했다.

진학보험은 일종의 교육보험으로 초등학교 1학년 자녀를 둔 부모가 매월 870환을 내면 대학 입학 때 5만100환, 학기마다 3만5700환을 지급하는 상품이었다. 당시 쌀 한 가마의 가격이 3만환 정도였으니 얼마나 큰 돈인지 짐작할 수 있다.

이런 한국 보험의 살아있는 역사들을 담아 교보생명은 5일 천안연수원에서 '교보 역사관'의 문을 연다. 이에 따르면 '아동보험'(어린이보험)은 진학보험보다 한 달 늦게 출시됐다. 0세부터 8세까지 어린이가 대상인데, 매달 300환을 내면 초등학교 입학 때 5000환, 초등학교와 고등학교 졸업 때 각각 5만환을 축하금으로 받는다. 특히 이 상품은 '특전 복채금부배당'이라는 약관을 만들어 자녀가 초등학교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5000명당 1명씩 추첨해 50만환이라는 '거금'을 줬다. 당시로선 파격적이었던 복권식 보험이었다. 요즘엔 보험금을 복권식으로 추첨해서 주는 보험 상품은 없다. 이들 두 상품은 3만여 명의 가입자를 모은 뒤 70년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 60~70년대= 60년대엔 산업화로 기업들이 많이 생겨나면서 단체보험이 크게 늘었다. 단체보험은 기업.관공서 등에서 20명 이상이 한번에 가입할 수 있는 상품으로 종업원이 퇴직하거나 사망하면 보험금이 지급됐다. 70년대 들어와서는 단체보험이 퇴조하고 개인보험으로 무게 중심이 옮겨졌다. 어느 정도 먹고 살 만해지자 비로소 자기 자신에게 눈을 돌린 것이다. 개인보험과 단체보험 비율은 60년대 초 20대 80, 60년대 말 40대 60로 바뀌었다가 70년대 들어 60대 40으로 역전됐다. 70년대 후반에는 보장성을 강화한 개인보험이 큰 인기를 끌었다. 재해보장보험.사망저축보험 등 사망과 상해를 보장하기 위한 보장성 보험이 쏟아졌고, 주택.정기.장기연금.생활보장 보험 등 10여 가지 상품이 등장했다.

◆ 80~90년대=80년 12월엔 암보험이 국내 처음으로 등장했다. 보험회사들은 '암도 완전 치료가 가능합니다'라는 문구를 내세워 영업하기도 했다. 당시 치료비가 너무 비싸 암에 걸려도 속수무책인 환자와 가족들을 겨냥한 것이다. 80~90년대에는 보험사들이 차별화 경쟁을 하면서 상품이 봇물처럼 쏟아졌다. 교육.연금.건강.저축보험 등이 틀을 갖췄으며, 이는 요즘의 종신.치명적 질명(CI).변액보험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은 "앞으로노인요양 서비스보험, 기업 연금보험, 민영 의료보험 등이 큰 시장을 형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창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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