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도청 '핵폭풍'] 테이프 처리 방식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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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수사 중인 옛 안기부의 불법 도청 테이프를 놓고 처리와 수사 방식에 논란이 일고 있다.

열린우리당은 특별법 제정안을,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은 특검 도입을 각각 제기했으나 위헌 소지가 있고, 테이프 내용의 유출이 우려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한시적 특별법 제정=불법 도청 행위에 대한 수사는 검찰에 맡기되 불법 도청 테이프의 내용 공개 및 처리 방향 등을 전담할 기구를 새로 만들자는 것이 추진 배경이다.

검찰이 현행법(통신비밀보호법)에 저촉돼 불가능하다고 밝힌 테이프 내용 공개 등 민감한 문제를 제3의 기구에서 검증.결정토록 하자는 취지다.

이 안은 국민의 알권리 차원에서 접근할 경우 과거 국가기관의 불법 도청행위로 생산된 도청 테이프의 내용을 공개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하지만 위헌 시비에 휘말릴 소지가 크다. 국민이 원한다고 해서 불법 행위로 얻은 도청 자료의 공개를 합법화하자는 것은 정치적 대중영합주의라는 것이다.

이석연 변호사는 "국회가 만장일치로 의결하더라도 공소시효 정지나 연장 등의 조항이 특별법에 포함되면 헌법이 금지한 소급입법으로 죄형법정주의에 어긋난다"고 말했다.

기구의 위원 선정 과정에서 공정성 시비가 불거질 수 있고, 위원들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 특검 도입=이번 사건에 국정원과 검찰의 전.현직들이 연루돼 있기 때문에 검찰과 국정원이 수사 또는 조사를 맡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게 그 근거다. 기존의 특검제도를 활용해 정부 영향을 받지 않는 중립적 인사를 특별검사로 임명하자는 것이다.

한나라당 장윤석 의원은 "김영삼 정부 때 누가, 왜, 무슨 목적, 어떤 방법으로 불법 도청을 했으며 김대중 정부 때 안기부의 불법 행위를 알고도 덮은 이유가 무엇인지를 낱낱이 조사해 밝히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중립적 인사가 특검이 되면 수사의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도청 테이프의 내용 등이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게 된다. 보안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연세대 법대 백승민 교수는 "특검법안을 만들 때 특례 규정을 둬 도청 테이프 공개 여부 등을 결정토록 하면 특별법 제정과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검찰이 계속 수사=검찰은 "정치권의 논의에 구애받지 않고 사건의 실체 규명을 위한 수사를 계속한다"는 입장이다.

검찰 관계자는 "신속한 수사와 보안 유지를 위해서는 검찰이 계속 수사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그러나 도청 내용을 공개하라는 일부 여론을 해소하기 힘들고, 수사가 미진할 경우 부실수사라는 비난을 떠안을 수 있다는 게 검찰로선 부담이다.

조강수.문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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