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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도서정가제 만든 최재천 의원 "책은 생선과 다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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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중앙포토]

새로운 도서정가제가 실시됐다. 21일 0시부터다. 대형 인터넷서점들은 그동안 최대 90%까지 할인해 판매하던 각종 서적의 가격을 일괄 조정했다. 최근 5주 연속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하던 만화 『미생』 완간 세트의 가격은 하루 사이에 평균 '6만원→9만원'으로 3만원 정도 올랐다.

도서정가제는 모든 도서의 할인 폭을 정가 기준 15%(직접할인 10%+마일리지 등 간접할인 5%)로 제한했다. 과도한 할인 경쟁을 막아 지역 서점을 살리는 동시에 책값의 거품을 빼자는 게 이 법의 핵심 취지다. 기존엔 신간은 19%(직접 10%+간접 9%)까지 할인이 가능했고, 출간 후 1년 6개월이 지난 구간은 할인 폭의 제한이 없었다.

도서정가제가 적용되기 직전까지 대형 서점들은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대규모 할인 공세를 펼쳤다. 막판 재고 처리를 위해서다. 예스24·알라딘 등 일부 인터넷서점은 19~20일 동안 거래가 몰리면서 수시로 서버가 다운되기도 했다. 많이 판매된 책 순위는 할인 폭이 큰 구간 도서들로 꽉 채워졌다. 니체와 칸트의 저서 등 '언젠가 한 번은 읽어야 할 책들'을 미리 사두려는 수요가 몰렸기 때문이다. 일부 누리꾼들은 "새로운 도서정가제가 제2의 단통법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앞서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 16일 '도서정가제와 도서 소비자의 편익 보고서'를 통해 "새 도서정가제로 책 가격이 오르면 책 수요도 줄어들 것"이라며 "소비 위축은 도서업계에 치명적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프랑스와 독일 등 도서정가제를 엄격하게 실시하고 있는 나라들의 평균 책값이 그렇지 않은 미국과 영국 등보다 대체로 비싸다는 분석도 덧붙였다.

반면 대한출판문화협회 등 출판·유통업계는 "구간 도서의 경우 출판사의 정가 재조정을 통해 사실상의 할인 효과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한다. 이들은 지난 19일 자율협약식을 갖고 ▶도서가격 안정화 ▶독서문화 진흥 ▶중소서점 살리기 등에 합의하기도 했다. 한국출판인회의 고흥식 사무국장은 "도서 정가는 출판사가 자율적으로 정하는 것이라 제한을 두지 않는다"며 "앞으로 적정한 인하율이 나올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처럼 논란의 중심에 선 도서정가제(출판문화산업 진흥법 일부개정법률안)를 만든 사람은 새정치민주연합 최재천(재선·서울 성동갑) 의원이다. 최 의원은 2013년 1월 동료 의원 15명과 함께 이 법을 발의했고, 지난 4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최 의원은 국회에서 손꼽히는 다독가다. 수 만 권의 장서를 보유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도서정가제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최 의원은 "전혀 염려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날 본지 전화 인터뷰에서다. 최 의원은 "도서라는 상품이 갖는 공적 기능이 있는데, 지금까지 도서 가격에 지나친 거품이 있었다"며 "출판사들이 미리 할인을 감안해 높은 가격을 매겨왔다. (새로운 법의 시행으로) 그 거품이 중장기적으로 서서히 빠지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휴대전화 단통법 때문에 (도서정가제의) 위험성이 지나치게 과장되고 있다"면서 "빵은 오늘 안 팔리면 신선도가 떨어지고, 생선은 떨이까지 하지만 책이란 건 기존 상품과 다른 성격이 있다"며 책의 '공적 기능'을 강조했다. 다음은 최 의원과의 일문일답.

-인터넷에서 새로운 도서정가제에 대한 반발이 심하다.

"(대형 서점들의) 무분별한 할인 판매가 도리어 피해를 준다. 도서라는 상품이 갖는 공적 기능이 있다. 또 동네 상권 살리기처럼 작은 동네 서점을 살릴 수도 있다. 유통질서를 정상화하는 의미가 크다."

-같은 법을 실시하고 있는 유럽 국가들도 출간 2년이 지난 책의 가격 할인은 제한하지 않는다.

"나라마다 형편이 다르다. 그런 미시적인 부분은 법안을 낸 사람이 결정할 게 아니다. 정부,출판인회의, 동네서점, 인터넷 서점 등이 모여 협상해 시행령을 통해 보완해야 한다. 우리는 기준만 제시해준 것이다. 세부적인 협상까지 우리가 할 수는 없다."

-법안의 최초 발의자로서 일정 기간 이후 추가 할인은 허용돼야 한다고 생각하나.

"책은 근본적으로 식품처럼 유효기간이 있는 상품이 아니다. 빵은 오늘 안 팔리면 신선도가 떨어지고, 생선은 떨이까지 하지만 책이란 건 기존 상품과 다른 성격이 있다. 이를 테면 프랑스 문화부 장관은 이 법을 만들면서 '책이 상품이라고?' 이러면서 되묻는다. '책은 상품이 아니다 틀렸어!'라고 말한다. 그런 측면에서 이 법안을 만들었고, 그런 취지가 시행 과정을 통해 잘 조정될 것이라 본다."

-제2의 단통법이란 평가도 나온다.

"책은 휴대전화와 다르다. 휴대전화는 가격 자체가 100만원 짜리다. 휴대전화 단통법 때문에 그런 식으로 상품의 가격을 규제하는 시도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위험성이 과장되고 있는 것이다. 각 서비스 상품의 성격에 따라 정부의 개입 정도나 정책은 달라질 수 있다."

이윤석 기자 american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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