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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우릴 보고 웃지 '덤 앤 더머 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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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명콤비가 돌아온다. 무려 20년 만에. ‘덤 앤 더머 투’(원제 Dumb and Dumber To, 11월 27일 개봉, 피터·바비 패럴리 감독)는 ‘덤 앤 더머’(1994)의 형제 감독 피터·바비 패럴리와 두 주연 배우 짐 캐리·제프 다니엘스가 다시 뭉친 속편이다. 전편의 왁자지껄한 정서, 특유의 미덕인 화장실 코미디를 야무지게 펼쳐내며 두 바보의 한층 진해진 우정을 과시한다.

'덤 앤 더머' 바보들의 행진

20년 전, ‘덤 앤 더머’는 원초적인 유머와 기상천외한 소동극으로 전 세계를 초토화시켰다. 패럴리 형제는 데뷔작인 이 영화로 미국식 화장실 코미디, 즉 성적인 농담이나 지저분한 묘사로 점철된 유머의 대가로 떠올랐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몸 개그와 화장실 유머에 고루 능한 두 역대급 바보 캐릭터, 로이드(짐 캐리)와 해리(제프 다니엘스)를 탄생시켰다.

이미 알려진 대로 두 주인공의 이름은 무성영화 시대의 전설적 코미디 배우 해롤드 로이드(1893~1971)에서 따온 것이다. 그중에도 로이드를 연기한 짐 캐리는 ‘덤 앤 더머’가 개봉하자 뉴욕타임스로부터 “이 시대의 제리 루이스”라는 평가까지 받았다. ‘덤 앤 더머’에서 짐 캐리가 보여준 우스꽝스러운 표정과 엉뚱한 행동을 미국 슬랩스틱 코미디의 대가 제리 루이스(1926~)에 견준 것이다. 그리고 제리 루이스에게 딘 마틴(1917~95)이 있었듯, 짐 캐리에게는 제프 다니엘스가 있었다. 짐 캐리와 제프 다니엘스는 ‘덤 앤 더머’에서 환상의 복식조를 이뤘고, 스크린을 마음껏 휘젓고 다녔다. 두 배우는 어이없는 말을 속사포로 내뱉었고, 저속한 행동을 가감없이 쏟아냈다. 이들의 코미디에 평단과 대중 모두 열광했다. 작고한 영화평론가 로저 에버트(1942~2013)는 “‘덤 앤 더머’는 나 스스로 당황할 정도로 크게 웃을 수 있는 장면들로 넘쳐난다.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고 호평했다. 물론 흥행에도 성공했다. ‘덤 앤 더머’는 북미에서만 1억2700만 달러, 전 세계 2억5000만 달러의 박스오피스를 기록했다. 제작비 1600만 달러의 15배 가까이 벌어들인 셈이다.

‘덤 앤 더머’의 이야기는 가방에서 시작됐다. 리무진 운전기사로 일하던 로이드는 승객으로 태운 매리(로렌 홀리)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공항에 도착한 매리는 가방을 리무진에 두고 내린 채 비행기를 타고, 로이드는 가방을 되찾아 주기 위해 매리의 행선지를 수소문해 무작정 그곳으로 떠난다. 물론 그의 여행에는 단짝 해리가 동행한다. 본래 이 가방은 납치된 남편을 구하기 위해 매리가 인질범들에게 주려던 돈이 담긴 것. 이제 인질범들은 가방을 갖고 있는 로이드와 해리를 쫓는다. 영화는 가방을 돌려주려는 로이드와 해리 그리고 로이드 일행을 쫓는 인질범의 추격전을 바탕으로 한바탕 정신 없는 소동극을 펼쳐낸다.

‘덤 앤 더머’는 뇌를 비워두고 봐야 묘미가 느껴지는 영화다. 그 미덕은 난장판 코미디에서 비롯된다. 로이드와 해리의 저속한 행동과 어이없는 대사들은 개연성을 따질 계제가 못 된다. 추운 날씨에 스키를 타러 간 해리의 혀가 리프트에 얼어 붙는 설정이나 매운 고추를 잔뜩 넣은 햄버거를 먹은 악당이 생사를 오가는 상황은 이해하려고 하면 골치만 아파진다. 배꼽 잡고 웃으면 그만이다. 가방에서 비롯된 예측불허의 상황은 연쇄 반응을 일으키며 점점 이야기를 구축해 간다. 패럴리 형제는 이를 두고 예상치 못한 소동극을 다룬 고전영화 ‘설리반의 여행’(1942, 프레스턴 스터지스 감독)에서 영향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표정과 동작부터 웃기는 두 배우의 유머는 이 영화를 이끌어 가는 연료 노릇을 톡톡히 했다. 로이드와 해리의 유머에는 삶에 대한 애환도 묻어났다. 로이드는 해리에게 ‘옆구리가 허전해서 못 살겠다’며 매리를 찾아가고 싶다고 고백하는데, 이 장면에서 로이드의 표정은 사뭇 진지하다. 그 엉뚱한 로이드가 맞나 싶을 정도다. 또 문제의 햄버거를 먹은 악당이 결국 숨을 거두자 로이드는 ‘인생이란 그런 거야’라며 인생의 허무함을 읊조린다.

‘화장실 코미디의 교과서’로 불린 ‘덤 앤 더머’는 이후 ‘아메리칸 파이’ 시리즈(1999~2012)나 ‘행오버’ 시리즈(2009~2013)를 비롯해 숱한 영화에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짐 캐리와 제프 다니엘스는 바보의 아이콘이 됐다. 바가지 모양의 머리 스타일에 깨진 앞니를 한 로이드, 산발로 헝클어진 머리 스타일에 우둔해 보이는 몸짓의 해리는 그 자체로 새로운 바보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이 영화를 찍을 당시 제프 다니엘스는 ‘바보 같은’ 머리 스타일을 유지하기 위해 빗질을 전혀 하지 않았다고 하니, 그 기특한 고생이 빛을 발한 셈이다. 만약 해리와 로이드 역에 애초 물망에 올랐던 니콜라스 케이지와 게리 올드먼이 출연했다면 이 코미디가 제 맛을 낼 수 있었을까. 글쎄, ‘잘 모르겠다’에 한 표를 던지고 싶다.

‘덤 앤 더머 투’ 어떻게 달라졌나

기다린 보람이 있다. 원년 멤버들이 20년 만에 다시 뭉친 ‘덤 앤 더머 투’는 전편의 전통을 이어가되, 더 과감한 웃음을 선사한다. 이야기는 해리의 신장이 좋지 않아 이식받아야 한다는 데서 출발한다. 신장을 이식해 줄 가족을 수소문하는 과정에서 해리는 20년 전, 잠깐 만난 애인 프리다 펠처(캐슬린 터너)가 자신의 딸을 낳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한가닥 희망을 얻은 해리는 로이드와 함께 딸을 찾아 여행을 떠난다.

‘덤 앤 더머 투’의 이야기 구조와 흐름은 전편과 흡사하다. 로이드와 해리가 전편에서 매리를 찾아 나섰다면, 속편에서는 해리의 딸을 찾아 나선다. 누군가를 만나기 위한 여정에서 예상치 못한 난관에 직면하고, 이를 두 사람만의 순수함과 기지(?)로 극복해 가는 점도 닮았다. 트레이드마크가 된 로이드와 해리의 외모는 다소 주름진 얼굴을 제외하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둘의 순수함은 20년이 흘렀어도 그대로다.

전편의 해괴한 유머 코드 역시 제대로 계승했다. 지저분하고 불쾌한 상황으로 웃음을 유발하는 시도는 여전하다. 로이드와 해리는 방부제를 음료수처럼 벌컥벌컥 마시거나 비좁은 자동차 안에서 방귀 세례를 퍼붓는 지독한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엉뚱한 발상도 녹슬지 않았다. 로이드는 핫도그에서 소시지만 꺼내 먹고 빵으로 입을 닦고 버린다. 이처럼 ‘덤 앤 더머 투’는 전편의 미덕을 고스란히 이어 받았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전편에 비해 야한 농담이 더 짙어졌다는 사실. 발칙해진 유머로 민망한 장면도 있으니 참고하시길. 예컨대 해리는 자신과 어린 딸이 함께 사는 모습을 상상하는데, 초경을 한 딸에게 와인의 코르크 마개를 건네는 장면이 등장한다.

전편과 연관된 잔재미도 쏠쏠하다. 전편에서 로이드는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이웃에 사는 시각장애인 꼬마를 속였다. 해리의 죽은 잉꼬를 산 것인 양 속여서 팔아 버린 것이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뒤, 전편의 꼬마는 청년이 되어 집에서 수많은 애완용 새를 기르고 있다. 여행을 떠나기 전, 로이드는 해리가 기르던 고양이를 그 집에 두고 온다. 그리고 이어지는 장면. 고양이 방귀에서 꼬마가 기르던 새의 깃털이 후두두둑 날린다. 꼬마, 아니 청년은 속편에서도 로이드에게 당한 셈이다. 한편 해리의 딸을 둘러싼 반전도 재미를 배가한다. 해리는 어렵사리 딸 페니(레이첼 멜빈)를 찾는데 성공하지만, 페니에게 반한 로이드의 방해 공작 때문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리고 모두가 한자리에 모인 순간,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고 충격에 휩싸인다.

속편이 흔하디 흔한 할리우드에서도 ‘덤 앤 더머 투’는 아주 이례적인 속편이다. 무려 20년 만에 속편이 제작돼 개봉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그만큼 전편의 존재감은 독보적이었고, 그 명성을 넘어서는 게 쉽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동안 워너브러더스 등 할리우드의 대형 영화사들이 제작을 맡으려다 하차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럼에도 속편 제작에 대한 기대는 꾸준히 이어졌다. ‘덤 앤 더머’는 그동안 할리우드 코미디영화에 굵직한 획을 그은 작품으로 평가받아 왔고, 여느 관객은 물론이고 제니퍼 로렌스 등 할리우드의 몇몇 배우들까지 공공연히 이 영화의 팬임을 자처하며 속편 제작에 힘을 실어줬다. 결국 원년 멤버들은 다시 뭉쳤다. 짐 캐리는 “팬들의 요청에 출연을 결정했다”고 말할 정도다. 지난 11월 초 미국 LA에서 열린 ‘덤 앤 더머 투’ 월드 프리미어 행사에서 피터 패럴리 감독은 “짐 캐리, 제프 다니엘스와 영화를 만드는 건 즐겁다. 난 이 작업을 또 할 수 있다”고 밝혔다. 3편 제작을 기대하게 하는 발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덤 앤 더머 투’의 엔딩에는 새로운 속편에 대한 예고(?)가 등장한다. ‘덤 앤 더머 포, 2034년 개봉’이라는 문구가 나오는 유머다.

▶음식+화장실 유머의 진수
‘덤 앤 더머’에는 음식과 관련된 재미있는 해프닝이 여럿 등장한다. 대개 화장실 유머의 진가를 경험할 수 있는 장면이다.

1 맥주 마시는 경찰관
가방을 되찾아 주기 위해 긴 여행을 떠난 로이드와 해리. 너무 들뜬 나머지 과속으로 경찰의 단속에 걸린다. 게다가 두 사람의 차 안에는 병뚜껑이 따져 있는 맥주병이 가득하다. 음주 운전까지 의심받게 된 두 사람. 경찰은 맥주병을 압수하고 직접 맛을 본다. 하지만 병 속에 든 것은 맥주가 아니라 로이드의 소변. 맥주, 아니 소변을 맛 본 경찰관의 표정이 압권이다.

2 햄버거 먹는 인질범
로이드 일행의 동선을 파악한 인질범은 도로에서 미리 기다리다가 자신의 차가 고장났다며 동승을 청한다. 이후 일행은 햄버거 가게에 들린다. 로이드와 해리는 동승객을 골탕 먹이기 위해 햄버거 안에 매운 고추를 한가득 넣는다. 위궤양을 앓고 있던 인질범은 이 햄버거를 먹고 속이 뒤집어진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해리는 인질범의 주머니에서 약을 꺼내 먹이는데, 알고 보니 쥐약. 인질범이 로이드 일행을 죽이는 데 쓰려던 것이다.

3 차 마시는 해리
우여곡절 끝에 매리와 연락이 닿은 로이드와 해리. 로이드의 기대와 달리 매리는 해리와 가까워진다. 실망한 로이드는 찻잔에 초강력 설사약을 타서 해리를 골탕 먹이려 한다. ‘반 숟가락만 먹어도 효능이 좋은’ 설사약을 한 통이나 부은 로이드. 결국 이 차를 마신 해리는 엄청난 복통에 시달리고, 이루 말할 수 없는 양의 배설물을 쏟아낸다. 설상가상 변기마저 고장난다.

지용진 매거진M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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