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분 만에 뒤집힌 여·야·정 누리과정 예산 합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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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최경환(左), 황우여(右)

20일 오전 11시20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총회가 끝난 뒤 안규백 원내수석부대표는 기자들에게 “오늘 아침 황우여 교육부 장관(사회부총리 겸임)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여야 간사가 만나 누리과정 예산을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그동안 교문위는 만 3~5세 누리과정 예산 순증가분 5600억원을 놓고 지방채를 발행해 재원을 충당하자는 새누리당과 정부 예산에 넣어야 한다는 새정치연합의 주장이 맞서 내년도 예산안을 의결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국회 16개 상임위 가운데 예산안을 처리하지 못한 곳은 교문위가 유일하다. 안 수석부대표에 따르면 새누리당이 야당 주장을 받아들여 5600억원 전액을 예산으로 편성하기로 합의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10분 만에 이 발표는 뒤집혔다. 오전 11시30분 새누리당 김재원 원내수석부대표는 기자회견을 자청해 “5600억원을 국고에서 부담하기로 합의했다는 내용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며 “상임위 간사 차원에서 그런 의견이 오갔는지는 모르겠지만 당 지도부와 협의한 사실도 없고 우리 당은 그런 합의를 할 의사가 전혀 없다”고 못박았다. 교문위 새누리당 간사인 신성범 의원은 “당 지도부와 미리 상의하지 못한 책임을 지겠다”며 간사직을 자진 사퇴하겠다고 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소동의 한복판엔 황 장관이 있었다. 황 장관은 이날 오전 국회 의원회관을 방문해 교문위 야당 간사인 김태년 의원을 만났다. 그러곤 문제의 5600억원을 예산에 편성시키기로 했다. 이어 황 장관은 새누리당 간사인 신 의원을 김 의원 방으로 불러 동의를 얻어냈다. 나중에 신 의원은 “야당 간사와 우리 (당 출신) 장관이 합의했다면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 구두 합의가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3자 회동을 전혀 알지 못했던 새누리당 원내지도부는 펄쩍 뛰었다. 김 수석부대표는 “원내지도부와 일언반구 협의가 없었다”며 “황 장관이 월권을 했다”고 말했다.

 황 장관은 야당안을 수용한 데 대해 “상임위 정상화가 시급하다는 장관으로서의 충정이었다”며 “다만 야당이 너무 성급히 공개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해프닝은 예산편성 원칙을 강조하며 양보 불가를 고집하는 최경환 경제부총리와 사회적 갈등 해소를 중시하는 황 장관 간 파워 게임에서 비롯됐다는 분석도 적지 않다. 황 장관은 한나라당 원내대표였던 2011년 무상보육을 당 정책으로 내놓은 당사자다. 당 관계자는 “황 장관이 무상보육 재원 논란을 조속히 마무리하려다 보니 무리수를 둔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최 부총리는 이날 새누리당 중앙위원들을 대상으로 한 특강에서 누리과정 예산에 대해 “교육감들이 법에 규정된 의무지출을 할 생각은 않고 안 해도 그만인 무상급식엔 예산을 푹푹 쓰고 있다”고 비판했다.

 새정치연합은 합의를 번복한 새누리당을 성토했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는 이날 충남 보령에서 총회를 열고 황 장관과 교문위의 합의가 관철되도록 공동 대응하기로 했다며 이 같은 호소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이미 편성한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 집행을 유보하겠다고 밝혔다.

김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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