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 타임] 오래된 물건은 어느새 한 식구 정든 소형차 팔며 코끝 시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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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이 버릇이 생긴 건 4년 전부터다. 행여 짙은 회색의 프라이드 소형차가 지나가기만 하면 무의식적으로 그 차를 좇아 고개가 돌아가는 것은.

4년 전까지 우리 집 차는 회색 빛 프라이드 베타였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돼 처음으로 남편과 내가 돈을 모아 산 중고차였다. 구입 당시의 기쁨이나 차를 몰면서 생긴 사연은 당연히 이루 말할 수 없다.

하지만 8년 정도 타고 나니 주위의 지인들이 더 성화였다. 집은 나중에 바꾸더라도 차는 안전을 위해 빨리 바꾸라는 거였다. 그래서 결국 차를 바꾸기로 결정했다.

차를 영업소로 넘기기 전날 밤. 남편이 슬그머니 사라졌다. 어디갔나 싶어 나가보니 차 옆에 덩그렁히 서 있는 게 아닌가.

"…그동안 우리 가족 태우고 다니느라 고생 많았다. 너도 힘들었지. 어딜 가든 사고나지 말고…."

남편은 마치 자식을 객지에 보내는 늙은 아비처럼 말하며 그렇게 30여분간 차를 어루만졌다. 덩달아 나도 왠지 모르게 마음이 시큰해져 우리 차의 '건강'을 기원했다. 그 뒤로 초등학교 친구 안부가 궁금해지듯 우리 프라이드가 생각났다. 물론 다시 본 적은 아직 없다.

우리 어릴 적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물자가 풍족한 요즘이다. 귀한 줄 모르고 쓰는 이는 어른만 아니라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나 자신도 내심 뜨끔거릴 때가 있지만, 물건에 대한 아이들의 자세를 보면 그 소중함을 전혀 모르는 태도에 걱정스러울 때가 있다. 단지 흔하다는 이유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 못지않게 사람과 물건 사이에도 인연이 있지 않을까. 어떤 물건이든 내 것이 됨으로써 가치를 가지게 되는 이유다. 그 가치를 알게 될 때에 비로소 그 물건과 추억이 쌓이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소중한 이에게 처음 받았던 귀걸이, 신혼 여행지에서 갑작스러운 소나기에 샀던 분홍색 우비, 가족들의 추억을 고스란히 쏟아 놓는 무거운 비디오 카메라, 첫 적금통장에 찍었던 귀퉁이 부러진 뿔도장….

아이들에게도 자신의 물건과 친구가 될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 그래서 서로 얘기를 하는 사이가 되면 자연스럽게 물건을 아끼지 않을까. 단순한 절약 교육의 효과보다 아이의 마음이 더 넉넉해지는 것은 커다란 '덤'이리라.

김은주(주부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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