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복후의 활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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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53년 9월말에서 10월초까지는 개인이나 단체나 대부분 서울로 환도했다.
1·4후퇴때는 2주 정도의 시간밖에 걸리지 않고 서울의 거의 전시민이 빠져 나갔으나 돌아올 때는 훨씬 여유있는 움직임으로 거의 반년에 걸친 움직임을 보여 주었다.
집이 무너지고 세간이 다 부서졌지만 그래도 내 집에 돌아왔다는 안도감에서 힘들지 않게 복구작업을 할 수 있었다.
YWCA는 앞에서도 말한 것같이 선발대가 미리 와서 구호사업을 했고 미국으로부터의 원조금으로 회관수리도 되어 있었다. 10윌초, 수복후 칫번째 실행위윈회를 가졌다. 여기에는 위원 15명이 참석했고, 미국에서 돌아와 학생부 간사로 있던 김현자씨, Y틴부 간사로 있던 김봉화씨, 국제친선부 간사 김옥주씨, 금산에서 채용된 최영자씨등 4명의 간사가 참석했다.
이 첫번째 회의에서 논의된 것은 대체적인 정책과 특히 지방Y조직의 강화에 대한 것이었다. 이때부터 한국Y의 형태는 연합회가 지방Y보다 커보이는 어떤 모순을 안고 있는, 기형적인 형태로 나타나고 있었다.
사실 실제 활동을 전개시키고 이끌어나가는 곳은 지방 YWCA인 것이다. 각지방 Y가 다 같이 활발하게 움직여 Y가 커갈 수 있는 것이고 연합회는 지도자 양성이나 프로그램·자료제공 등으로 필요한대로 도움을 주어야 하는 위치에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때의 평편은 지방Y들중 약화되었거나 도저히 연합회에 가입할 수 있는 기존에 도달하기 어려운 지방Y들이 있었다. 이때문에 취소된 Y도 있었으며, 아니면 기준에 미친다 하더라도 전혀 활동이 부진한 곳들도 있었다. 또 어떤 곳은 의원들은 있지만 지도자가 없어 이끌어 나갈 사람이 없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연합회는 지방Y 육성이 가장 시급한 일이라고 의견을 모았고, 그때 뿐 아니라 지금까지도 그 일은 연합회의 제1의 과제인 것이다.
54년4월22일(한국Y창립일)에 수복후 처음 갖는 대회인 제18회대회를 명동 서울 Y 강당에서 가졌다.
한국여성으로는 제일 처음으로 고등고시에 합격한 이태영씨가 이때 실행위윈에 피선되어 그를 중심으로란 여성의 법적 지위에 대한 의식을 강조할 것을 앞으로 2년동안의 중점사업으로 채택했다.
이태영씨는 현제 가정법률상담소를 운영하는데 심혈을 기울여 이땅에서 법을 몰라 억울한 처지에서 울고 있는 사람들을 돕고 있다.
이태영씨는 이화여전 가사과를 다닐 때부터 여성들에 대한 차별대우를 고쳐야겠다는 강한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4학년때 YMCA 주최 학생웅변대회에서 1등을 했던 제목도 『제2의 노라』였다.
그는 36년 이화전을 졸업하고 얼마안있어 정일형씨와 결혼하여 일제말에는 많은 고생을 했다.
해방이 되면서 공부할 뜻을 두고 서울대학교 법과를 다시 다녔고 54년 고등고시에 합격한 것이다.
다시 그는 더큰뜻을 품고 박사논문에 착수하여 68년 학위를 받았다. 그는 줄곧 정치하는 남편의 뒷바라지를 하며 이대 법대학장의 중책도 맡고 있으면서 밤을 세워 논문을 써 결실을 맺었다. 필자는 그가 법대학장일 때 문리대 학장으로 있었기 때문에 그의 공부하는 모습을 지켜보았고 그가 바로 슈펴우먼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때 한국 Y 실행위원이 되면서 부터 오늘날까지 YWCA 프로그램에 적극적이었다.
또 이 대회에서 강조했던 점은 YWCA는 의원들이 직접 참여하는 운동체로서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대회에서 결정한 또 하나의중요한 일은 회윈으르서 회비를 납부한다는 것은 회원의 중대한 의무인 것을 인식시킨 것과 각 회원이낸 회비가운데 한 사람에 4O환은 세계Y에, 60환은 연합회에 각각 부담금으로 납부할 것등이었다.
이렇게 해서 처음으로 한국도 받기만 할것이 아니라 세계 Y에 대한 우리의 의무를 다 하겠다는 의지가 서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염치없는 사람, 뻔뻔한 한국YWCA가 되지 말자는 것이었다.
한국Y가 이렇게 생각한 것은 물론 옳은 일이었고 작게나마 우리들의 의무를 했다는데 대한 금지 또한 가슴을 부풀게 했다. 세계적인 기구속에 우리가 일원이 된것, 그것만도 우리들의 자랑인데 언젠가는 자립하여 남을 도와주기도하는 우리가 될것을 약속한 것같아 우린 떳떳했고 줄거웠다
이대회에서 이루어진 모든 결심이나 결의는 한국YWCA가 조금씩 자라고 있고 생각과 행동이 분별있는 성장한 모습을 보인 대회였다고 보여진다.
열과 성의도 필요하지만 좀더 침착하게 생각하는 단계에 온것을 증명해주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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