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수석·보좌관들 성향은] 청와대 '전문가 對 운동권' 두 날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5면

"제주도로 내려갑시다." "안됩니다."

지난달 2일 오전 수석.보좌관 회의가 열린 청와대 본관 집현실. 새 청와대의 회의 가운데 가장 격렬했다는 논쟁이 벌어졌다.

'4.3사건 진압 과정에서 무고한 양민이 학살됐다'는 내용의 진상규명위 보고서를 놓고서다. 이때 이미 노무현 대통령은 보고서가 나오면 제주도에 가 희생자들에게 공식 사과를 하겠다고 약속한 상태였다.

문제는 보고서의 단서조항이었다. 진상규명위의 결론에 대해 군 등이 강력히 반발해 '6개월 안에 새로운 내용이 나오면 보고서를 수정한다'는 조건이 붙었던 것. 재야 출신의 유인태(柳寅泰)정무수석은 "6개월 유예해도 내용은 그대로다"며 제주행을 밀어붙였다.

예비역 3성 장군인 김희상(金熙相)국방보좌관은 "당시 진압에 참여했던 군.경의 입장도 있다. 대통령의 행동은 상징성이 크다"고 반대했다. 결론은 정부의 공식 사과를 미루는 쪽이었다.

노무현의 청와대는 양 날개를 달고 있다. 대략 이상주의와 실용주의로 나누어지는 양 그룹에는 운동권 출신과 전문가 출신이 각각 포진해 있다. 이들이 토론을 통해 현안에 대한 정리를 어느 정도 해놓으면 盧대통령이 최종 결정을 하는 시스템이다.

지난달 24일 회의에선 공무원 노조의 저지로 인천시장의 구청 방문이 무산된 일이 보고됐다. 평소 노조에 관심이 큰 盧대통령의 '판결'을 기다리며 모두가 조용히 있었다.

이런 침묵을 깨고 金국방보좌관이 입을 열었다. "자꾸 노조, 노조 하는데 그 사람들은 노조원이기 전에 공무원이다. 국가의 공복(公僕)으로서의 자세가 우선이지, 신분에 어긋나는 행동이다." 다소 놀란 문희상(文喜相)비서실장이 "다음 건 보고하시죠"라고 분위기를 바꾸려고 하는 순간 盧대통령은 "국가 기강 해이엔 단호하게 대처하라"며 金보좌관에게 힘을 실어줬다.

반기문(潘基文)외교보좌관은 지난 3월 이라크전과 관련한 반전.파병반대 여론을 감안해 건설공병대만 파병하겠다던 정부의 방침을 돌려놓았다. 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 그는 "우방은 말로만 우방인 게 아니다. 의료부대도 파견해 성의를 보여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해 관철했다. 교수 출신의 라종일(羅鍾一)국가안보보좌관과 조윤제(趙潤濟)경제보좌관이 이들과 같은 그룹으로 분류된다.

羅보좌관은 盧대통령에게 '신문 가판을 봐야 한다'는 주장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이 한국에 추가 파병 요청을 했다'는 내용이 일부 신문에 보도되자 "국방부가 해명을 했는데도 반영이 안됐다. 이럴 경우엔 가판을 보고 수정을 요구하든 어쨌든 대응이 필요하다"고 盧대통령에게 말했다는 것이다.

현실을 중시하는 이들 전문가 출신 보좌진의 상대편에 재야 또는 시민단체 출신들이 있다. 柳정무수석과 문재인(文在寅)민정수석, 시민단체 출신인 박주현(朴珠賢)국민참여수석, 정찬용(鄭燦龍)인사보좌관 등이다. 양측은 집단화돼 있지는 않으나 주요 현안을 놓고 수시로 팽팽한 의견 대립을 보이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서승욱.김성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