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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거울로 한마디의 변명도 없다|독일의 역사교육|나치의 유대인학살 사실대로|"인종이론의 광기서 비롯"결론|점령지 저항운동도 생생하게 기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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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지난날의 「잘못된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는 민족은 그 저주받은 경험을 다시한번 겪게될 것이다….』 남미의 사가「산타야나」가 그의 저서에 자주 인용하는 유명한 문구다. 바로 이 문귀가 나치독일최초의 강제수용소로서 남독 뮌헨근교에 보존된 다카우수용소의 출입구에 붙어있다.
23만여명의 무고한 인명의 넋이거든 유물과 기록들을 둘러보고 문을 나서다 이 문귀를 보곤 새삼 석연함을 느끼게 된다.
이 수용소가 나치시대의 잔학했던 사실을 보여주는 사진과 유물·기록들을 정리하여 공개한지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방문객들이 줄을 잇고있다. 외국여행객은 물론 많은 독일사람들이 어린이들과 함께 살펴보고 지난날의 과오를 일깨우곤한다.
독일사람들이 나치시대를 말할때면 입버릇처럼 나오는 「나쁜 과거」란 어휘는 그러나 활자로서는 눈에 띄는 일은 드물다. 굳이 그런수식어를 붙이지 않더라도 어려서부터 역사를 있는 그대로 접할수 있도록 함으로써 스스로 「나쁘다」는 판단을 갖게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판단능력은 물론 학교의 역사교육에서부터 시작된다. 5학년부터 시작되는 중등학교의 역사교과서를 들추어보면 게르만민족이 유럽역사에 본격적으로 등장했던 1천년동안 숱한 전쟁사실을 기록하면서도 어느 특정민족의 잘잘못을가리는 「판만」이나 「주관」은 들어있지 않다. 「마르턴·루터」의 종교혁명이 세계에 끼친 독일정신의「위대한 업적」이라는 표현도, 그리고 나치의 잔학행위가「극악무도」하다는 표현도 없다.
서독의 중등학교에서 일반적으로 널리 사용되는 역사교과서 역시 이러한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5학년(한국의 국민학교 5학년)부터 8학년(중학교2학년)까지 대상으로하는 4권짜리 이 교과서의 이름부터가 「시대의 거울」이다.「독일사」라든가 「국사」라는 이름으로 따로 편찬되어있는게 아니라 세계사속의 한 부분으로서 다루어지고 있다.
독일역사중 가장 추악하고 부끄러운 기록인 1차대전이후부터의 근세사는 이중 제4권에 다루어져 8학년부터 배우도록 짜여져있다.
3부로 나뉘어 서술된 이 제4권은 그중 3분의 1가량을 「나치독재와 그 결과」라는 큰 단원으로 다루면서 「히틀러」의 침략전쟁, 휴대인학살, 점령지에서의 만행, 다른 민족들의 레지스탕스사실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고 있다.
90페이지에 이르는 나치시대의 역사중 「나치의 죄악」항목은 10여폐이지를 차지, 「유대인학살」이란 소제목으로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유대인대량학살은 42년1월20일 결정되다. 독일점령지역의 유대인들은 어린이까지 기차에 실려 학살장으로 수송되다. 아우슈비츠에서학살된 유대인은 2백만명, 전체적인 민족학살은 5,6백만명에 이르다.
폴란드에 39년현재 3백만명에 이르던 유대인중 살아남은 사람은 30만명뿐이다.』(118페이지)
14세 안팎의 학생들을 대상으로한 이 교과서에는 유대인의 학살에 가려 크게 주목받지 않는 접경지역의 무고한 인명살상에 대해서는 이렇게 서술한다.
『나치의 살육은 이것만으로 그친것이 아니다. 소련군포로 5백50만명중 독일수용소에서 3백인만명이 사망한것으로 밝혀졌다. 사망자중 14%는 잔학행위로, 나머지는 굶주림과 전염병으로 목숨을 잃었다. 소연민간인 사망자 1천2백만명과 폴란드민간인사망자의 대부분은 직접죽인 전쟁피해자가 아니라 나치의 범죄로 희생된 것이다.
이 살육행위는 어느 한 개인의 잘못이나 전쟁의 불가피성에 따른것이 아니라 「인종리논」의 광기에서 비룻된 것이다.』(119∼121페이지)
이렇게 이 교과서는 나치의 살육행위를 결론짓는 부분에서 인종리논, 즉 독일민족이 가장 우월하므로 월등한 다른 민족을 말살해도 좋다는 광기에 사로잡혔던 과거를 한마디의 변명이나 수식어없이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독일군이 점렴했던 각국에서의 저항운동은 「침략당한 민족들의 저항」이란 항목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나치에 대한 저항운동은 점령지역에서 활발히 전개했다. 프랑스에서는 1942년부터 갖가지 사보타지, 전단살포, 격추된 연합군조종사의 탈주지윈등이 시작됐다. 독일의 보복은 잔혹했다. 무고한 시민들을 인질로한 대량처형은 1944년 절점에 이르러 프랑스의 오라두르 쉬르 글란 마을에서는 어린이를 포함, 6백명의 남녀가 몰사당했다.』(121∼122페이지)
중급학년에서 이러한 역사교육이 실시되고나서 고학년(11학년·한국의 고등학교2학년)이 되면 다시 중급에서 배운 역사를 더 깊이있게 다룬다. 이때의 교과서는 꼭 한가지로 정해진게 아니라 교사가 선정해주는 여러가지 일반역사 서적을 학생들이 읽고 토론하거나 리포트를 작성해가며 자기나름대로의 견해를 형성한다.
물론 근세사의 부분에 이르러서는 중급학년때는 너무 참혹해 어린 학생들에게는 보여주지 않았던 기록영화들을 교실에서 상영하며 교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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