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늦게 시집온 큰동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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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거리감이 없다는 것은 어쩌면 버릇이 없다는 것과 통할지도 모르고, 반면에 그만큼 친밀하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는 우리 시댁을 빼 놓을 수가 없다. 한 예를 들면 여름에 시댁에 놀러가면 시어머니, 시누이, 며느리인 나까지 마루에 빙 둘러 누워 오랜만에 만나 밀린 얘기들을 하는 것이 그것이다.
시어머니 말씀인즉,
『애들 낳고 허리도 아픈데 뭐 하러 버티고 앉아 기운을 뽑느냐』하는 지론에 따라서였다.
남들이 보면 뭐 저런 버릇없는 집안이 있느냐고 흉볼지 모르지만 우리 식구들은 전연 개의치 않는다.
너 나 할 것 없이 베개 하나씩 맡아 갖고 누워서 얘기꽃을 피울 때, 시댁의 「시」 자도 생각나지 않고 친정 이상으로 거리감이 없고 마음이 푹 놓이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일도 큰며느리의 등장으로 순탄치 못하게 되었다.
연년생인 애 아빠와 아주버님 중에 둘째인 그가 1년 먼저 결혼한 것이 화근이었다.
결혼 후 1년여를 시댁의 자유분방한 분위기를 즐기던 내가 경상도 토박이의 종갓집 맏딸, 그것도 고등학교 선생님과 동서지간이 된 것이었다.
바야흐로 시어머니를 위시해서 시댁 여자들이 예의범절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이 역력했다.
그런데 나에게 생긴 고민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첫애도 내가 먼저 낳고 시댁풍습도 내가 좀더 잘 알고 하는데 이제 와서 생전 불러보지 않던 「형님」 소리를 하려니 영 발음조차 되어 주질 않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애들이 말할 때쯤 애들 핑계로 「큰 엄마」 「큰 엄마」하면서 어영부영 지내려는데 큰동서에게 눈치도 보이고 그쪽 풍습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것 같은 암시도 몇번 받았다.
그래서 이제라도 가내 질서를 위해서 「형님」이라 부르자고 작정은 했는데 5, 6년 동안 안 해본 「형님」소리가 하루아침에 나오지도 않는 터라 고심하다가 전화에 대고 하기로 했다.
큰동서가 받으면 대뜸 형님 소리부터 할 것.
『형님이세요?』
이 소리에 놀란 것은 내가 아니고 바로 큰 동서였다.
의외이면서도 흐뭇한 듯 목소리가 한 톤이 높은 듯이 들렸다.
『그러지 않아도 언제부터 실크 한 감을 주려고 했는데, 한번 놀러와서 색깔이 마음에 드는지 봐.』
이 복더위에 실크를 얻어 갖게 된 것도 우습지만 당연한 호칭을 무슨 큰 생색이나 내듯 억지로 한 것 같아 내심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이처럼 사소한 일을 통해서 친밀함과 예의가 적당히 어우러져야만 진정한 미풍이 된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앞으로 마주칠 수많은 인생사가 망망한 바다처럼 두렵게만 느껴지는 것은 지나친 기우일까? <서울 마포구 성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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