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선 한국 저물가 걱정하는데 … 한은 “내년 2.4% 상승” 낙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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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 목표를 지키지 못한 건 변명이 아니라 글로벌 현상이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내놓은 저물가 현상에 대한 해석이다. 지난 13일 금융통화위원회의 기준금리 동결 배경을 설명하는 자리에서다. 그런데 이 총재의 발언은 도리어 시장에서 한은의 정책 신뢰도에 대한 의구심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일본과 유럽이 디플레이션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저물가 수출에 나서고 있지만 마땅한 방어책을 한은도 정부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물가가 오르면 문제지만 내려가면 별문제가 없다’는 과거 고물가 시대 고정관념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서다. 한은의 물가안정 목표는 2.5~3.5%다. 이를 토대로 정부도 올해 물가 목표치를 2.5%로 설정했다. 하지만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4개월 연속 1%대에 머물러 있다. 한은의 오판에 가까운 물가 전망이 시장 혼란을 부채질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까닭이다.

 한은은 올해 기준금리를 2.5%에서 2%로 두 차례 낮췄지만 세월호 사고에 따른 소비 위축이 주된 이유다. 이 총재는 18일 강연에서 “디플레이션이 되면 백약이 무효”라면서도 “아직 우려할 정도는 아니다”란 기존 입장을 반복했다. 한은은 물가에 대해 낙관적이다. 국내외 주요 경제기관 중 한은의 내년 물가 상승률 전망치(2.4%)가 가장 높다. BNP파리바(프랑스)·도이체방크(독일)와 같은 글로벌 투자은행(IB)이 내년 한국 물가 상승률을 1%대로 예상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최경환 경제팀 이전 정부도 저물가에 대한 위기의식이 희박했다. 내내 물가 잡기에 나섰던 이명박(MB) 정부는 임기 마지막 해인 2012년 저물가 기조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는데도 관성대로 고물가 정책을 이어갔다. 이런 인식은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지난해 1%대 저물가 기조가 이어지자 2012년 31번 열렸던 물가관계장관회의는 7번으로 줄었다. 올해는 설과 추석을 앞둔 1월과 8월 두 차례만 열렸다.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취임 이후 의욕적으로 내놓은 경기부양 패키지 법안은 몇 개월째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이종우 아이엠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지금껏 인플레이션만 겪어봐 정부와 한은 모두 디플레이션이라는 새로운 환경에 대한 감이 없는 듯하다”고 말했다. 전민규 한국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그동안 한국 경제는 성장 일로를 걸었고 정부와 한은이 디플레이션을 방어한 경험이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은 금통위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달 금통위에서 한 금통위원은 “디플레이션 위험에 직면한 대부분 국가의 경우 물가 상승률이 1% 미만으로 떨어지게 되면 하락 속도가 빨라져 통화신용정책을 통해 선제적으로 대응할 시간적인 여유를 갖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기재부 관계자는 “경제 회복이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게 자연스럽다. 인위적인 물가 상승 정책에도 불구하고 경제가 잘 살아나지 않는 일본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현숙·이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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