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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만에 되살아난 "검은 배짱"에 올가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8년만에 되살아났던 「검은 배짱」 박영복 망령에 올가미가 씌워졌다.
74년 74억원의 부정대출로 75년 11월 서울 고법에서 징역 10년이 확정됐던 그는 76년 5월 간염·당뇨병 등으로 형 집행정지결정을 받아 1차로 풀려났다가 병세호전으로 재 수감됐고 78년 1월28일 2차로 형 집행정지결정을 받아 서울대병원에 입원치료 중에 또다시 검은 배짱을 발휘, 아풍물산이란 유령회사를 차려 사기행각을 벌였다.
행동총책은 박씨가 74년 이전 경기가 한창 좋을 때 차려준 요정 「학산」의 마담이자 내연의 처인 이순덕씨(51).
박씨는 병실 베드에 누운 채 이씨를 지휘, 은행돈을 자기 돈처럼 우려냈다.
이씨는 명동일대 사채시장의 사채 6억원을 끌어들여 서울신탁은행 종로 4가 지점에 예금했다. 이 수법은 74년 박씨가 은행사기극을 꾸밀 때와 똑같은 것으로 예금유치에 혈안이 된 은행의 약점을 교묘히 이용한 것이었다. 최근 이철희·장영자 부부도 높은 금리를 주고 1백80억원의 사채를 끌어들여 은행에 예금, 은행간부들이 오금을 못 펼 만큼 신용을 확보했으니 규모는 박씨 편이 작더라도 수법은 원조(원조)인 셈.
박씨는 웬만한 은행원이면 「박영복」이란 이름과 얼굴을 알고 있었으므로 자신의 운전사인 조장년씨(38)를 시켜 통장 직인·계인·소인 등을 위조하고 인감증명서까지 가짜로 만들어 「이영국」이란 유령인물로 행세했다.
박씨가 그 동안 병실에서 차린 회사는 아풍·목산·유현·나호·이호산업 등 자그마치 5개.
모두 도산 직전의 회사를 헐값에 인수하거나 자본금도 전혀없이 만든 준 유령회사였다.
이때부터 이들 회사 명의의 유령장부와 위조된 신용장을 미끼로 80년 5월엔 신용보증기금 대구지점장 성기언씨(47)를 통해 4억5천만원어치의 신용보증서를 발급 받아 대구투자금융 등 8개 금융기관에서 어음할인의 방법으로 2억1천만원의 현금으로 바꿔 챙겼다. 또 81년 3월에는 3억5천만원의 지급보증서를 같은 방법으로 받아냈고 사채유치를 해준 댓가로 81년 6월 6천20만원을 서울신탁은행 종로 4가 지점과 동대문지점에서 무담보로 신용대출을 받았다.
은행실정에 밝은 박씨는 이밖에도 이모씨(58·서올 석관동) 소유의 5층 건물(싯가 3억5천만원)을 은행에 담보로 잡히고 2억4천만원을 받아 절반인 1억2천만원을 가로챘다. 이때 박씨가 이자를 부담한다는 조건이었으나 박씨가 몇 달이나 이자를 갚지 않아 건물이 경매에 붙여지는 바람에 박씨의 범행이 들통났던 것.
검찰에 검거된 후 박씨는 『나도 친구에게 속은 피해자』라고 주장, 묵비권을 행사해 수사관들의 애를 태우는 지능적인 수법을 쓰기도 했다.
박씨의 병세는 중증 당뇨와 간경화증으로 복수(복수)가 많이 차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기의 천재 박씨는 고향이 경북 군위. 국민학교와 중·고교는 대구에서 다녔다.
박씨가 대구 D고교를 다닐 때도 학업성적은 중간정도였지만 서클활동이 활발해 생활기록부에 『성격이 활발하고 적극성과 통솔력이 강하다』고 기재되어 있다.
부산 모대학에 진학한 후에는 교수진의 생일을 메모해 선물을 들고 찾아다닐 정도였고 이 때부더 능란한 영어실력을 인정받았으며 그후 외항선원으로 세련된 사교술을 익혔다는 것. 형 집행정지기간은 복역기간에 산입되지 않기 때문에 아직 7년쯤의 형기가 남아있어 이번 사건의 형이 확정될 경우 박씨는 모두 19년의 형을 살게되는 셈이다.<권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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