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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년만의 방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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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금년 봄 나는 모처럼의 기회를 이용하여 한 3주일동안 미국을 여행하고 돌아왔다.
마침 보스턴대학에서 나에게 주는 명예경영학박사 학위수여식에 참석하기 위하여 보스턴을 들르게 되었기 때문에 이 기회를 이용하여 보스턴 외에도 샌프란시스코, 워싱턴, 뉴욕, 로스앤젤레스 등 대도시들과 스탠퍼드, 노퍼크, 린, 코닝 등 몇몇 소도시들을 들아 보고 귀국한 것이다.

<자원 없는 나라의 비결>
원래 보스턴대학에서는 오래 전부터 나에게 명예박사학위를 수여하겠다는 얘기가 있었으나나는 나에게 박사학위란 분수에 넘친 일이라고 생각한 나머지 고사를 거듭한 바 있다. 그러나 작년부터 보스턴 대학 측에서는 나더러 보스턴 대학에 한번 와서 비만 박사학위 수여식에 참석할 뿐 아니라 이 기회에 자원이 없는 한국이 어떻게 그토록 놀라운 경제발전과 기업 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는지에 관한 알려지지 앉은 얘기를 직접 얘기해 달라는 요청을 거듭해왔고 또 주변의 얘기도 1백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미국 사학명문인 보스턴대학에서의 제의이니 너무 사양하는 것도 결례가 될 것 같다는 의견들이어서 일단 그 뜻을 받아 들이기로 하고 미국 여행길에 나섰던 것이다.
그런데 일단 미국여행을 끝내고 나니 18년만에 처음으로 이루어진 이번의 미국방문은 나에게 있어 여러모로 남다른 감회를 느끼게 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 동안 가까운 일본엔 매년 2∼3회씩 다녀왔으면서도 우연하게도 미국이나 유럽 쪽으로 여행할 기회는 좀처럼 없었다.
나는 5·16직후인 1961년 9월 오늘의 전국 경제인 연합회(전경련)의 전신인 한국경제인협회 초대회장으로 재임하면서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소요되는 외자차관을 교섭하기 위한 민간경제사절단장으로 미국을 방문한 일이 있고 그 뒤에도 역시 차관교섭을 위해 유럽을 여러 차례 왕래하는 길에 미국을 경유한 일이 있다. 내가 마지막으로 미국을 들른 것이 1964년의 일이었으니까 이번이 곡 18년만에 미국을 다시 찾아본 셈이다.

<맥아더 기념관 참배>
이렇게 오랜만에 찾아본 미국이었기 때문에 이번의 미국여행은 나에게는 매우 유익한 관찰과 공부의 기회가 되었고 새로운 분발과 각성의 기회가 되었다. 이번 여행을 통해 나는 그 동안 삼성 산하 계열회사들이 각기 분야별로 거래관계를 맺고 있는 미국의 저명한 기업체와 금융기관, 경제단체와 언론기관들을 폭넓게 돌아보면서 미국의 경제현황을 현장에서 관찰할 수 있었고 또한 그밖에도 평소 오랫동안 마음속으로 생각해온 일들을 몇 가지 실천에 옮길 수 있었다.
그 중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일은 느퍼크로 우리 나라의 독립과 자유수호의 은인인「맥아더」원수 기념관을 찾아 참배했던 것과 또 뉴욕에서 82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건강한 노후를 보내고 있는「맥아더」원수 미망인을 본인의 희망에 따라 한식식당인「아리랑」2층을 전부 빌어서 오찬을 대접했던 것 등이다.
특히 한식은 평생 처음이라는 미망인이 이날 오찬석상에서 식사를 즐기고 또 옛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워하던 활달한 모습은 지금 생각해 보아도 흐뭇하기만 하다. 내가 많은 한국인들이 지금도「맥아더」원수를 잊지 않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이번 여행도중 노퍼크로 원수기념관을 참배했다는 사실 등을 얘기하자, 미망인은 신의를 중히 여기는 한국민의 국민성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으며, 이와는 달리 전후「맥아더」원수가 일본 점령군 사령관으로 재임할 때는 일본인들이 원수를 거의 신격화한 존재로 숭배했으면서도 일단 일본을 떠난 뒤의 원수는 일본인들의 머릿속에서는 하나의 망각된 존재에 불과해지더라고 말하면서 서운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18년만에 미국을 다시 찾아 돌아보는 가운데 가장 절실하게 느낀 감상중의 하나는 그 동안 우리의 국력이 괄목할 정도로 성장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바로 우리의 경제성장과 국력신장에 대한 평가 때문에 18년 전에 미국을 여행했을 때와 이번에 미국을 여행할 때 미국인들이 우리를 대하는 태도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한국인 보는 눈 달라>
예컨대 보스턴대학은 명예학위의 수여식이 있었던 4윌 2일을「B·C·이의 날」로 정하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기념행사를 진행했다.
수여식에는「레이건」대통령과 매사추세츠주 출신인「케네디」및「총거스」상원의원, 그리고 주지사와 보스턴시장 등 많은 인사의 축전이 와 있었다.
식전과 심포지엄, 그리고 만찬에는 40개 저명 기업과 15개 유력 은행의 경영정상들과 8개 대학의 교수 등 2백여 명의 하객이 참석해 주었다.
「실버」총장은 학위수여식사에서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북한의 그것을 3배나 앞서고있는 것은 민주사회와 자유기업체제의 우위성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찬양했다. 그는 아울러 삼성그룹의 연간 매출액이·한국 GNP의 8%, 납세총액이 국가세수의 5%를 차지한다는 사실을 들어 세미나에서 그것을 가능케 한 경영철학을 알아보고 그것을 배우자고 했다.
수여식에서 우리 애국가가 연주될 때와 학위수락연설을 할 때에는 참석자 일동이 기립하여 박수를 보내 주었다. 이러한 예우에 나는 한국경제의 발전과 그에 따르는 삼성의 성장이 이게 미국 조야의 평가를 받게 되었구나 하는 감격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수락연설의 서두에서 한국의 방위와 경제발전에 기여한 45년 이래의 미국의 지원에 깊은 감사의 언사를 함으로써 이들의 후례에 답했다.

<계속>
삼성 이병철 회장은 지난 3월 17일부터 4윌 6일까지 약 3주일동안 미국을 다녀왔다. 도미 중 이 회장은 보스턴 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고 경제계·정계·학계·언론계의 정상급 인사와 폭넓은 접촉을 가졌다.
이 회장의 방미는 18년 만이어서 미국의 모습과 한국에 대한 평가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 회장은 귀국 후 미국여행담을 단편적으로 밝힌바 있는데 최근 그것을 중합 정리했다. 이 회장이 본 오늘의 미국 및 세계경제와 한국경제의 진로 등을 나누어 소개한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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