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영화 관속의 드라큘라 주연은 배우 아닌 주한미군 「켄·궤린」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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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영화에 출연한 한 평범한 외국인이 세계적인 배우인 양 거짓 선전되어 문제가 되고 있다.
문제의 영화는 현재 모개봉관에서 상영중인 『관속의 드라큘라』(감독 이형표)란 영화. 태창영화사(대표 김용준) 작품이다.
영화사 측에서 이 영화에 출연중인 「드라큘라」 역이 미국영화에서의 「드라큘라」 역 단골인 세계적인 배우 「켄·크리스터피」라고 선전하고 관객들도 그대로 믿고있다.
그러나 『관속의 드라큐라』에 나온 실제 인물은 영화배우와는 거리가 먼 주한 미8군 군사정전위원회소속 육군중사(미군계급 E7) 「켄·궤린」씨(41·Kenneth Guerin)이다.
「궤린」씨는 『이런 사기가 이 나라에선 어떻게 공공연히 자행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분개하고 있다.
영화사에서 선전용으로 인쇄해 밝힌 「켄·크리스터피」란 인물은 다음과 같다. 올해 37세. 프랑스계 미국인으로 오클라호마대에서 사회과학을 전공, 고교시절부터 연극을 좋아해 대학을 졸업한 후 브로드웨이 무대에 진출, 연극을 했고 NBC-TV의 전쟁시리즈 『하이아바브』의 「주불」 상사 역을 맡아 고정출연하는 등 영화·TV·연극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연극배우다.
이번 영화에 출연하게 된 동기는 『드라큘라의 핏발』 『드라큐라 공포의 최후』 등에서 호연한 바 있어 출연하게 됐다. 「켄·크리스터피」의 출연소감은 역할은 해보던 역이라 별 어려운 점이 없었으나 지금까지 드라큘라 영화와는 달리 섹스 신이라든가 불교와의 갈등에서 오는 싸움 등 새로운 장면이 많아 당황했다. 그러나 스태프의 도움으로 평생 처음 진지한 마음으로 연기에 임했고 지금까지 수십편의 영화보다 자신이 돋보인 것 같아 기쁘다 했다.
그러나 이러한 선전내용은 모두 거짓말이다.
「궤린」씨는 영화의 「영」자도 모르는 평범한 미국인이고 (극영화 출연도 물론 이번이 처음) 브로드웨이 연극이나 TV영화, 더군다나 드라큘라 영화라곤 근처에도 가 본 일이 없는 사람이다. 다닌 대학도 오클라호마대가 아니라 오클라호마주에 있는 로튼시의 카메론대를 졸업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궤린」씨의 출연료 문제. 영화사 측이 같은 선전 인쇄물에서 밝힌 것은 『출연료는 본인이 밝히기를 거부하고 있으나 국내에서는 사상 유례 없는 최고의 개런티를 받았으며…』라고 말하고 있으나 「궤린」씨가 받은 출연료는 1백40만원 뿐. 『함께 근무하는 8군의 동료들은 내가 벼락부자라도 된 듯 알고있다』고 「궤린」씨는 말했다.
우리 나라 영화팬들에게 알려진 진짜 드라큘라배우는 「크리스터피·리」(61)로 「리」는 영국 배우.
영화사에선 「궤린」씨 본인에겐 한마디의 양해도 없이 이름마저 진짜와 비슷한 「켄·크리스터피」로 갈아치운 것이다.
「궤린」씨는 『결국 사기 극을 벌이기 위해 있지도 않는 유령 배우 한 명을 조작해 낸 것』이라고 했다.
「궤린」씨가 영화에 출연하게 된 것은 장모여인을 통해서였다.
장여인은 외국인을 국내의 광고모델, TV나 영화출연 등을 전문으로 주선하는 중계인으로 알려졌다.
「궤린」씨는 영화사 측 사람·이감독·장여인 등과 22신에 1백40만원을 받기로 합의하고 2주 동안의 휴가를 얻어 출연하게 된 것이다.
「궤린」씨는 『이번 일은 꼭 바로 잡아야 한다』면서 대단히 강경한 태도로 변호사를 선임해 정식 고발할 절차를 준비하고 있다.
「궤린」씨는 이런 허위사실을 바로 잡기 위해 장여인과 영화사에 몇 차례나 연락했으나 1개월이 지나도록 아무런 회답을 받지 못하고 있다.
「궤린」씨는 지난 6월3일 영화가 개봉되기 전 영화사 측ㅇ서 마련한 기자회견에서도 허수아비노릇만 했다. 『영화사 사람들과 기자들 사이에 한국어로만 말이 오갔고 나는 웃으면서 사진만 찍히는 역할을 했을 뿐 말 한마디 못했다』고 했다.
한편 영화사 측에선 『약간 과장선전을 하려다보니 이런 실수를 저지른 것 같다. 팬들에게 미안하고 「궤린」씨에게 사과한다』고 밝혔다.
2년 전 한국에 배치 받아온 「궤린」씨는 부인과 1년 6개월 된 아들이 있다. <김준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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