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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FTA의 활용과 정치경제적 대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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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일러스트=박용석]
사공일
본사 고문·전 재무부 장관

우리 경제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지난 60여 년간 발전해온 과정에는 추후 지속성장을 위한 결정적인 계기가 몇 차례 있었다.

 물론 첫 번째 계기는 국정의 우선순위를 경제개발에 둔 정부가 1960년대 초반부터 추진한 수출 주도의 대외지향적 성장전략을 펼친 데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전략으로 우리나라는 ‘한강의 기적’을 일구어낼 수 있었다.

 두 번째로 80년 초의 물가안정과 거시경제의 안정화시책 추진으로 개발연대의 급성장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약화된 재정과 금융 기반을 튼튼히 하고 만성화된 인플레 체질을 바로잡아 안정성장의 기틀을 마련한 것을 들 수 있다.

 그리고 90년대 말의 환란 이후 자의반(自意半) 타의반(他意半)으로 추진됐던 개혁, 특히 기업과 금융 부문의 구조조정으로 우리 경제의 근본체질이 크게 강화된 것을 세 번째 계기로 꼽을 수 있다.

 그러나 현재 한국 경제는 어려운 세계 경제 여건 탓도 있지만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지 못한 채 활력을 잃고 장기침체 가능성마저 우려해야 하는 처지에 있다. 더욱이 경제 성장잠재력이 크게 떨어지고 있어 이대로 간다면 앞으로 10년 이내에 현재 3.5% 수준에서 2%대 이하로 떨어질 가능성마저 있다.

 이러한 때에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이 실질 타결됐다. 거대 이웃 중국과의 FTA는 우리가 잘 활용만 한다면 우리 경제발전사에 또 한 번의 결정적 발전계기로 활용할 수 있는 일이다

 지도를 한번 펼쳐 보자. 일단 우리나라는 13억 인구를 가진 거대 중국의 심장부에 위치한 것과 같은 이점을 갖고 있다.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중국 경제의 이웃효과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한·중 FTA로 중국 내수시장 접근이 용이해짐에 따라 중국 시장 내에서 얻을 수 있는 직접적 추가 경제 이득이 상당할 것이 분명하다. 이에 더하여 우리 국내에서 한·중 FTA를 계기로 얻을 수 있는 간접적 효과가 더 클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국내 간접 효과를 최대화하려는 정책적 노력은 우리 경제의 활력을 되찾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우리는 중국보다 앞선 시장경제 관련 법과 제도를 포함한 제도적 인프라를 갖고 있다. 따라서 차제에 한국 전체를 ‘경제특구화’한다는 차원의 통 큰 정책적 노력을 펼쳐 중국을 겨냥한 세계적 기업과 우리 기업의 투자를 대폭 늘릴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빠르게 늘어나는 중국 중산층과 고소득층의 수요를 감안하여 특히 보건·의료, 관광, 교육, 금융 등의 서비스 분야에 대한 과감한 개혁과 개방을 통한 국내외 투자를 촉진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이들 중국 중·고소득층을 겨냥한 특화된 친환경 유기농제품 생산체제 마련 등의 노력도 병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반면에 이러한 노력으로 이미 높은 우리 경제의 중국 의존도가 더욱 높아질수록 정치경제적 부담과 리스크는 그만큼 늘어난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지난주 베이징의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 모임을 ‘조공 바치러 온 것’에 비유한 일부 중국의 언론보도를 우연한 사건으로 보아 넘길 일은 아니라고 본다. 이것은 중국인의 뇌리에 깊이 잠재되어 있는 중국 특유의 세계관, 즉 ‘중국’ 중심의 세계질서 속에서 다른 나라들을 보는 시각의 표출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중국은 주변국과의 관계도 자기중심으로 구축하려 할 것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한·중 FTA의 경제적 이득을 최대한 활용함과 동시에 정치경제적 리스크 대비를 위한 노력도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

 이러한 차원에서도 우리는 기술과 질적인 측면에서 중국보다 한 걸음 앞서나가는 경제를 만들어야 한다. 중국 기업과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특정 한국 제품과 서비스 수가 많아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중국보다 항상 한 발 앞선 개방과 자율, 그리고 긴밀한 국제협력 체제를 유지해 나갈 수밖에 없다.

 물론 이러한 경제적 차원의 노력과 함께 우리는 미국을 위시한 여타 주요 주변국과 균형 있고 유연한 외교관계를 유지해야 함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현재 중국 경제는 국가자본주의의 체제적 모순과 다수 국영기업의 비효율, 방대한 부실금융 등 많은 구조적 문제를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과거의 영광을 되찾으려는 강한 범국민적 의지와 저력, 그리고 후발 경제대국으로서의 이점을 충분히 살려 앞으로 상당 기간 비교적 높은 성장세를 유지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세계 속의 중국 경제 비중은 계속 늘어날 것이며 경제 이외의 모든 분야에 걸친 중국의 영향력은 계속 커질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때에 성사된 한·중 FTA를 계기로 거대 중국의 경제적 이웃효과를 최대화함과 동시에 지정학적 리스크와 정치경제적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사공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