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시의적절한 한·중·일 정상회담 제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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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박근혜 대통령이 한·중·일 정상회담을 제안했다. 박 대통령은 그제 미얀마에서 열린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3(한·중·일)’ 정상회의를 공동 주재하는 자리에서 “멀지 않은 장래에 한·중·일 외교장관 회의가 열리고 이를 토대로 3국 정상회담도 열리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말은 ‘희망한다’고 했지만 사실상 제안한 것이다. 지금 상황에서 한국이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시의적절한 제안을 했다고 본다.

 한·중·일 3국 정상회담은 2008년 후쿠오카에서 처음 열린 이래 순번제로 의장국을 바꿔가며 매년 개최돼 왔다. 그러나 2012년 5월 베이징에서 열린 5차회담을 끝으로 아직까지 못 열리고 있다. 그해 9월 일본이 단행한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국유화 조치로 중·일 갈등 수위가 높아진 탓이 크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한·일 갈등까지 겹쳐 정례화된 줄 알았던 3국 정상회담이 2년째 휴업 상태에 있다. 세계 인구와 국내총생산(GDP)의 5분의 1을 차지하는 한·중·일 3국이 뜻을 모아 해결해야 할 다양한 현안들에 대한 정상 차원의 논의가 계속 미뤄지고 있는 것이다.

 이번 제안은 베이징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중·일 관계가 풀릴 기미를 보이고 있는 데 대한 공세적 대응의 성격도 있어 보인다. 중·일은 동중국해 영토 분쟁 등과 관련한 4개 항의 합의를 통해 긴장 수위를 낮추기로 하고, 정상회담까지 했다. 이에 따라 위안부 문제를 이유로 일본과의 정상회담을 거부하고 있는 한국만 동북아 외교 전선에서 고립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박 대통령의 제안은 3국 정상회담이란 우회로를 통해 그런 가능성을 차단하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차기 3국 정상회담의 의장국은 한국이기 때문에 박 대통령은 회담을 제안할 명분과 자격을 갖추고 있다. 중국과 일본이 화답할 일만 남았다. 합의사항 해석을 둘러싼 중·일 갈등 재연 가능성과 일본 총선과 그에 따른 개각 가능성 등이 변수긴 하지만 가급적 연내에 3국 외무장관 회의가 열리고, 이어 내년 초 한국에서 한·중·일 정상회담이 열리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