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헤르메스 주가조작" 고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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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영국계 헤르메스펀드가 주가 조작 혐의로 금융 당국에 의해 검찰에 고발됐다. 금융 당국이 외국계 펀드를 불공정 거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것은 처음이다.

증권선물위원회는 22일 삼성물산의 적대적 인수합병(M&A) 가능성을 제기해 주가를 끌어올린 뒤 보유 주식을 처분해 거액의 시세차익을 챙긴 혐의로 헤르메스펀드의 영국인 펀드매니저 C씨, 국내 D증권사 런던 현지법인 주재원 김모씨를 검찰에 고발했다. 증선위는 또 임직원의 잘못에 대해 법인의 책임을 함께 묻는 증권거래법에 따라 헤르메스 펀드도 검찰에 고발했다.

증선위에 따르면 펀드매니저 C씨는 2003년 11월~2004년 3월 삼성물산 주식 777만2000주(지분율 5%)를 사들인 뒤 증권사 직원 김씨와 공모해 일곱 차례에 걸쳐 삼성물산의 적대적 M&A 가능성을 언론에 유포했다. 이들은 특히 지난해 11월 삼성물산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 자사주를 취득한다고 공시하자 한 중앙 일간지와의 인터뷰를 자청, "헤르메스가 적대적 M&A 세력을 지원할 가능성이 있고, 삼성물산에 우선주를 사들여 소각하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삼성물산 주가가 급등하자 C씨는 12월 3일 펀드가 보유한 주식 전량을 일시에 처분해 292억원의 매매차익을 올렸다. C씨는 이 과정에서 자신의 명의로 삼성물산 우선주 8300주를 매수했다가 되팔아 5400만원을 챙기기도 했다. 증선위는 이들이 부당이득을 얻기 위해 고의로 루머를 유포한 것으로 확인됨에 따라 감독 당국이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조치인 검찰 고발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검찰 조사 결과 혐의가 입증되면 부당이득의 최고 세배까지 추징금을 물릴 수 있다.

증선위 관계자는 "외국인인 헤르메스를 상대로 실질적인 처벌을 하기는 어렵더라도 국내외 금융시장에 경종을 울리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헤르메스는 이날 국내 홍보대행사를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강한 불만을 표시하고 "검찰 조사 과정에서 혐의를 벗고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금감위는 이날 농협과 도로공사 등 공기업과 파생상품을 거래하며 위험을 제대로 알리지 않은 도이치은행과 BNP파리바은행 서울지점에 대해 기관경고했다. 또 이들 지점의 지점장 등 임직원 5명에 대해 면직과 업무정지.감봉 등의 조치를 내렸다.

금감위 관계자는 "이들 은행에 대해 당초 관련 업무를 정지시키는 중징계를 내릴 방침이었으나 법규 위반 여부를 놓고 논란이 있는데다 관련 시장 침체가 우려돼 징계 수위를 다소 낮췄다"고 설명했다.

나현철 기자

<헤르메스 관련 일지>

-2003년 11월~2004년 3월:헤르메스, 삼성물산 주식 777만2000주(5.0%) 취득

-2004년 11월 29일:헤르메스 펀드매니저 C씨가 국내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삼성물산의 적대적 M&A 가능성 제기

-12월 1일:인터뷰 기사 보도

-12월 3일:헤르메스, 삼성물산 주식 전량 매도

-12월 17일:금감원, 헤르메스 불공정거래 조사 시작

-2005년 3월:금감원, 영국 현지에서 헤르메스 조사

-7월 22일:증선위, 헤르메스 검찰 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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