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 포구로 '낭만의 배' 타러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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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 포구의 소박한 풍경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집니다. 어린 시절 강에서 수영하고 물고기 잡으며 놀던 기억도 떠오르고요. ”

충남 서천군 장항읍과 전북 군산시를 오가는 도선(渡船·여객선)은 추억이 살아 숨쉬는 곳이다.

한반도의 허리를 감싸고 전라도와 충청도의 경계를 나누며 서해로 빠지는 금강. 금강을 사이에 두고 장항과 군산은 직선 거리 1.5km로 마주보고 있다.

1990년 금강하구둑이 완공되기 전엔 두 도시를 잇는 유일한 교통수단이 이 배편이었다.

31년 장항선 철도 개통 이후 장항이 항구로 개발되면서 개통한 이 항로는 한창일 때 여객선 두 척이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하루 수만명을 실어날랐다.

그러나 이제 여객선은 사람을 실어나르는 교통수단으로는 점차 기능을 잃어가고 있다.

금강하구둑이 건설된 데다 장항제련소가 성업했던 70년대 3만명을 넘었던 장항읍 인구가 최근 1만4천여명으로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요즘 이 배편은 교통수단보다 관광 유람선 역할이 더 커졌다.편도 10분,왕복 20분 정도 걸리는 도선에 올라 강 한가운데에서 바라보는 두 도시의 풍경은 갈매기 소리와 어우러져 제법 그럴싸하다. 특히 해질 무렵 강물이 바다의 품에 안기는 모습은 이곳에서만 구경할 수 있는 장관이다.

때문에 주말이면 금강 하구 유람을 하기 위해 가족이나 연인끼리 찾는 관광객 수가 하루 평균 1천5백여명에 이른다.

정강남(56·사업)씨는 “지나간 기억이 떠오를 때마다 여객선에 오른다”고 말했다.

하지만 두 도시를 오가는 통학생·직장인 및 장항역에서 기차를 타려는 전북 지역 주민들과 군산지역의 의료기관을 찾는 장항 지역 주민들은 여전히 여객선을 이용하고 있다. 충남 주민이 자동차를 이용해서 군산을 가려면 장항읍에서 10km쯤 강 상류로 올라가 하구둑을 이용해야 하기 때문에 이동 시간(40여분)이 배를 이용하는 것보다 훨씬 길기 때문이다.

장항행 도선에서 만난 군산시 서해대 1학년 장은혜(21·여)씨는 “취미 삼아 검도를 배우기 위해 수업이 끝나면 장항으로 간다”며 “장항에서 검도도 배우고 저녁 무렵 남자 친구가 태워주는 자동차를 타고 군산으로 돌아오곤 한다”고 말했다.

군산에 살지만 장항에 직장이 있다는 유은주(30·여)씨도 “거리상으로 가까워 배를 자주 이용한다”며 “소박한 금강포구의 분위기를 감상하다 보면 금방 선착장에 도착해 아쉽기만 하다”고 말했다.

여객선은 행정적인 경계로 전혀 다른 두 도시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했다. 장항 사람들은 전라도 사투리를, 군산 사람들은 충청도 사투리를 자연스럽게 구사한다.

한성섭(49)여객선 선장은 “도선은 승선 인원은 적지만 장항과 군산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명물”이라며 “관광 유람선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강 포구에서 10km쯤 떨어진 금강 하구둑 북단에 강변을 따라 늘어선 10여개의 카페와 20여개의 음식점도 이 배의 손님을 끄는데 한몫한다. 각양각색의 건물이 신시가지처럼 깨끗하게 조성된 이곳엔 군산의 데이트족들도 즐겨 찾는다.

금강하구둑 북쪽으로 조금만 가면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촬영지로 유명한 신성리 갈대밭(7만여평)과 국내 최대의 금강하구 철새도래지가 한 눈에 들어온다. 신성리 갈대밭은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한국 갈대 7선(選) 중 하나다.

현재 여객선은 군산에 본사를 두고 있는 월명토건㈜ 해양사업부가 운항하고 있다. 2001년 6월 이 회사가 맡기 전엔 군산시와 서천군이 공동으로 출자해 설립한 금강도선공사에서 관리했었다.

배는 아침 6시30분(군산)과 6시50분(장항)에 첫 출항해 하루 48차례 왕복 운항한다. 어른 기준 편도요금은 1천원. 그러나 금강하구둑 건설 뒤 금강포구에 쌓인 토사로 강바닥이 낮아져 썰물 때에는 하루 최고 10여차례 결항하기도 한다.

이성호(李聲鎬) 서천부군수는 “다른 교통 수단의 발달로 도선의 기능이 점차 약화되는 만큼 금강 포구의 멋을 살려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 중”이라고 말했다.

서천=김방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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