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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메이드 인 차이나’ 공습 예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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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북한이 경제특구로 개발하려던 황금평은 허허벌판으로 방치된 상태다. [중앙포토]

“개성공단에 거대한 중국 시장이 열렸습니다. 중국 수출이 새로운 도약의 기회가 될 겁니다.”

 개성공단 입주업체 나인의 이희건 대표가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타결을 반기며 내놓은 소감이다. 한국과 중국은 지난 10일 타결된 FTA에서 한반도 역외가공지역 생산품을 한국산으로 인정하고, 특혜관세를 받아 수출할 수 있도록 합의했다. 현재 한반도의 역외가공지역은 개성공단뿐이다. 입주업체들은 반색했다. 중국과 비교했을 때 가격경쟁력이 충분하다고 판단해서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개성공단 근로자 평균 임금은 월 147.6달러(약 16만원)다. 중국 생산직 근로자 초임(월 27만원)보다 40%가량 적다. 품질도 자신한다. 북한 근로자의 손기술이 좋기 때문에 중국 본토에서 중국산 제품을 넘어설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런데 막상 한·중 FTA 협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함정이 숨어 있다. 특혜관세 혜택은 개성공단의 전유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중국도 북한에 제2의 개성공단 같은 역외가공지역을 만들면 특혜관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북한 생산제품에 중국산 마크를 달아 한국에 역수출할 수 있다는 얘기다. 두 나라가 10일 서명한 FTA 합의 의사록을 통해 ‘한반도 역외가공지역은 한국과 중국이 모두 설치할 수 있다’고 규정해서다. 한국이 타결한 13개의 FTA 중 상대국의 한반도 역외가공지역을 인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중국이 다른 FTA 국가와 달리 북한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데다 오랫동안 정치·경제적으로 가까웠다는 점을 고려했다”고 말했다.

 이런 결정의 배경은 한·중 FTA 협상이 시작된 2012년 5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양국 통상장관은 FTA 협상 개시 공동성명을 통해 ‘양국 합의에 따라 지정되는 역외가공지역을 한·중 FTA에 포함한다’고 선언했다. 개성공단을 콕 집어내지 않고 훨씬 더 넓은 범위에서 역외가공지역을 표현한 문구다. FTA 협상단 관계자는 “그때 이미 중국이 북한에 역외가공지역을 설치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포괄적인 문구를 작성한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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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상황을 보면 그럴 만했다. 2009년 9월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의 방북 이후 북·중 경제협력은 급진전했다. 중국의 대대적인 북한 투자가 시작된 시기다. 2010년 12월 두 나라는 경협 특구 공동 개발에 합의했다.

두만강 일대의 나선경제무역지대와 압록강 일대의 황금평·위화도경제지대다. 나선경제무역지대에는 38개의 중국 업체가 투자를 했고, 황금평·위화도지대도 신압록대교 같은 인프라 시설의 착공에 들어갔다. 이 두 곳에 중국 기업의 입주가 활발해지면 사실상 개성공단과 같은 규모로 발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속도를 내던 북·중 경협은 지난해 장성택이 처형되면서 브레이크가 걸렸다. 배종렬 수출입은행 북한개발센터 수석연구위원은 “장성택은 김정은 후계체제 구축시기 북·중 경협의 사령탑이었다. 그가 처형된 이후 북한과 중국의 정부 간 경제 교류는 관망세로 돌아선 상태”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중국은 이번 FTA 협상에서 역외가공지역에 대한 권리를 잊지 않고 챙겼다. 사실상 나선과 황금평 두 경제특구를 염두에 둔 포석으로 풀이된다. FTA가 발효되고 나서 북·중 관계가 개선되면 언제라도 한국에 이들 특구의 역외가공지역 지정을 요청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임금 상승으로 원가 경쟁력이 줄어든 중국 입장에서는 값싼 북한의 노동력을 활용한 가공무역으로 생산성을 끌어올릴 수 있다. 중장기적으로 한국과 중국이 북한 경제를 두고 주도권 경쟁을 벌일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예를 들어 두 나라의 북한 생산 규모가 커지면 똑같은 북한 생산품이 한편에선 한국산으로 중국에 수출되고, 다른 편에선 중국산으로 한국에 수입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물론 꼭 중국이 견제 대상이 될 거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정부는 오히려 중국이 북한에 역외가공지역을 만들면 중장기적으로 한·중이나 남북 관계 발전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산업부 관계자는 “중국이 만든 북한 경제특구에 한국 기업이 많이 입주하면 북한과의 소통채널이 넓어질 수 있고, 북한 개혁·개방 유도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청한 대북 전문가는 “한반도를 둘러싼 지정학적 리스크를 고려할 때 한·중 FTA가 발효되더라도 역외가공지역이 폭넓게 적용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이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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