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 기획] 중동까지 한류 바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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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사에 부는 한류 바람이 뜨겁다. 아시아에 국지적으로 불던 한류 열풍이 어느새 중동의 사막까지 휩쓸 태세다. 이집트를 비롯한 중동 국가의 TV에서 한국 드라마가 인기리에 방송되고 거리에는 한국어를 배우려는 젊은이들이 넘쳐난다. 한국을 소개하는 아랍어 인터넷 사이트에도 클릭 소리가 요란하다. 모래 바람보다 더 뜨거운 중동의 한류. week&이 추적했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가정이건 거리건 한국상품 물결 … "한국말 배우자" 대학 강좌 계속 늘어

◆"쿠리야(한국) 최고."

이집트 수도 카이로 외곽에 위치한 대형 할인매장 카르푸. 계산을 위해 줄을 선 한 동양 여성에게 이집트인들이 몰려와 묻는다.

"한국 사람인가요? 정말 재미있는 드라마였어요."

"한국이란 나라가 그렇게 아름다운 줄은 몰랐어요. 아주 멀지만 꼭 가보고 싶어요."

방송된 지 6개월도 넘은 '가을동화'와 '겨울연가'를 잊지 못하는 이집트 아줌마들이다. 자기들끼리 드라마 장면들을 차례차례 기억해 내며 왁자지껄 수다를 떤다.

젊은이들도 "쿠리야가 최고"라며 엄지를 치켜세운다. 축구 때문이다. 월드컵 예선에서 중동의 강호 쿠웨이트가 한국에 4-0으로 패한 것은 축구가 최고 인기 스포츠인 이 나라에서 엄청난 충격이었다. 이집트 국영방송 스포츠 센터의 슈바이르 해설가도 "한국 축구, 정말 잘한다"는 말을 수없이 되풀이했다.

◆유창한 한국어로 유적 설명

잇즈딘 알후세인(22)은 카이로 박물관의 가이드다. 유창한 한국어로 이집트 유적에 대해 설명한다. 이런 모습은 기자 지역의 피라미드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 됐다. 한국어가 '국제어'로 발돋움하고 있는 단면이다. 알후세인은 한국문화원에서 한국어를 배웠다. 카이로의 한국대사관 건물에 있는 문화원에는 언제나 한국어를 읽는 소리가 낭랑하게 울려퍼진다. 현재 초.중급반 학생 20여 명이 일주일에 두 번씩 한국어 배우기에 여념이 없다. 대학도 마찬가지다. 카이로에 있는 명문 아인샴스 대학에는 9월부터 한국학이 중동 최초로 정식 학과로 개설된다. 세계 경제의 중심권으로 진입한 한국과 한국어를 본격 연구해야 한다는 여론에 따라서다.

"이미 요르단.모로코 등의 대학에선 한국어 강의가 진행되고 있지만 정식 학과로 개설되는 것은 큰 의미를 지닌다"고 최승호 주이집트 한국대사는 강조한다.

◆한국차 사려면 "줄서요 줄서"

중동에서 한류를 주도하는 것은 역시 한국 상품이다. 이집트 등 중동 각국에서 한국 자동차가 거리를 휩쓸고 있다. 카이로만 해도 '한 집 건너 한 대'라는 말이 들릴 정도로 인기다. 한국차에 대한 불만은 "한국차를 사려면 몇 개월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뿐이다. 올해 1분기 국내 자동차 3사의 이집트 시장 점유율은 40%를 넘어섰다.

GM대우의 김학준 이사는 "한국차의 시장 장악은 앞으로 수년간 계속될 것"으로 전망한다. "사막에 차를 파느라 고생도 많았지만 거리에 우리 차가 가장 많다는 것을 확인할 때마다 힘이 솟는다"고 김 이사는 말한다.

한국 휴대전화는 중동에서 최고 인기다. 특히 삼성의 고가 휴대전화는 상류층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삼성 휴대전화 없이는 명함을 내밀지 못한다"고 이집트의 거부 맘두흐는 으스댄다. 가전제품의 약진도 눈부시다. 중동의 경제전문지 메나리포트는 최근 "한국의 LG전자가 중동 최대의 가전 브랜드"라고 보도했다.

◆"한국에 눈이 오나요."

"한국 상품이 거리와 가정을 장악하고 있지만 아직 많은 중동인이 한국을 잘 모른다"고 카이로 아메리칸 대학의 왈리드 카지하 (정치학)교수는 지적한다. 경제 진출에 비해 문화적 교류가 미약했다는 말이다. 실제로 '겨울연가'를 본 상당수 이집트인이 "한국에도 눈이 내리는 줄 처음 알았다"고 말할 정도다. 중동인들은 한국인을 만나면 북한인지 남한인지 물어본다. 한국은 경제.스포츠의 강국이고 북한은 정치.외교의 강국이라는 인식이 여전히 남아 있다.

중동 여러 나라의 구석구석에서 한국 기업의 광고판을 볼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이 너무 경제적 이익만 추구한다는 불만도 전혀 없는 게 아니다. 카지하 교수는 "한국인들이 '경제 동물'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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