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벌이엔 수단 안 가리는 세태를 보는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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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분주한 아침이 거쳐가고 조금은 한가로운 시간에 조간신문을 펴 들었다. 온통 장 여인, 장 여인이다. 경악을 금치 못하는데 밖에서 요란한 확성기 소리가 들려 온다. 숨죽여 들어보니『살아 움직이는 낙지가 열 마리에 천 원』이라는 생선장수의 외침이다.
『꿈틀꿈틀하는 낙지가 천 원에 열 마리, 방금 서산에서 올라온 낙지가 열 마리에 천 원! 일년에 몇 번 먹을까 말까 한 비싼 낙지를 요번 기회에 잡숴 보세요.』연거푸 떠들어대는 확성기 소리가 무척이나 시끄럽고 귀찮았는데 계속 듣다 보니 슬슬 구미가 당기기 시작했다. 어디한번 나가 볼까 망설이다가 결국 몇 천 원을 손아귀에 쥐고 옆집 심부름까지 맡아 남보다 늦을세라 부지런히 달려간 나는 어이없이 웃고 말았다.
살아서 꿈틀꿈틀한다던 낙지는 몽땅몽땅한 주꾸미(낙지의 팔촌?)열 마리, 그것도 죽은 것을 꿰어 놓은 것이었다.
양푼에 하나 가득 씩 담아 놓고 파는 앞치마 두른 아저씨는 변명 없이 불 그레 웃으며『낙지로 생각하고 잡수세요.』모두들 낙지와 주꾸미가 같으냐고 공박을 주면서도 한 괘씩 사들였다. 일단 손님을 끌어 놓고 보자는 속셈이 들여다보여서 애교 스럽기 보다는 밉살스러웠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어야겠다는 진실이 결여된 세태의 단면을 보는 듯 했다.
요즈음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들 영악하다. 조그마한 아이들도 부모에게서 배운 탓일까, 네 것보다는 내 것의 분별이 지나치게 정확하고 서로 싸워도 어느 한편 털 끝 만한 양보가 없이 무섭게 싸운다. 하기야 돌아가는 세상에 맞추려면 너나 없이 영악해야지 어수룩하면 어디 떼이는 게 코뿐일까?
한 여인이 우리나라 전 통화량의 6∼7%에 해당하는 돈을 마음대로 주물렀다니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어? 아!』하는 소리만 나온다.
평소에 손이 크다는 소리를 잘 듣는 나는 요즘은 행여 누가 그 소리 할 새라 두렵다.
한 마리에 몇 백원 하는 낙지를 천 원에 열 마리라는 말을 믿고 솔깃해서 뛰어 나가는 여편네인 나는 그런 유의 큰손은 정녕 아닐 것이다.
남을 속이고 남는 것은 짧은 생명이다.
다음 날에도, 또 다음 날에도 그 생선 장수의 외침에 뛰어 나갈 수가 있겠는가.
하나만 알고 둘은 헤아리지 못했던 생선 장수의 귀에 확성기를 대고「양치는 소년」의 우화를 들며 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경기도 안양시 비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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