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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구 2대 1 편차도 과해 … 표 가치 ‘절반’ 누가 수긍하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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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호 04면

지난달 30일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박한철 소장이 선거구 획정 관련 선고를 하기 위해 자리에 앉아 있다. 헌재는 선거구 인구 편차를 3대 1에서 2대 1로 줄여야 한다고 결정했다. [뉴시스]
강휘원 미국 조지아주립대에서 정치학 박사를 받았다. 한국정책과학학회 회장, 한국정치학회·행정학회 이사를 지냈다. 오랫동안 선거구를 연구하며 ‘투표의 등가성을 위한 선거구 획정의 정치와 기법’(1999), ‘영국과 한국의 선거구획정위원회’(2002), ‘선거구 획정 기준과 게리맨더링’(200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구의 조밀성 측정과 GIS’(2006), ‘19대 국회 신설 선거구의 조밀성 측정’(2013) 등의 논문을 썼다. 2006~2007년 논문 인용 횟수로 사회과학 부문 전국 2위를 기록했다.

국회의원 선거를 하려면, 먼저 선거구라는 공간을 정해야 한다. 공간적·인구적 설정이 잘 이뤄져야 투표라는 정치행위가 의미를 지니는 법이다. 평택대 강휘원(행정학과) 교수는 1995년부터 국회의원 선거구 간 인구 편차 비율이 2대 1 미만이 돼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는 지리정보시스템(GIS)을 이용해 17~19대 총선 선거구의 조밀성을 측정하기도 했다. ‘게리맨더링(특정 정당이나 후보자에게 유리하도록 자의적으로 선거구를 정하는 일)’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란 생각에서다. 그는 “그동안 선거구 획정에 대해 연구해 왔지만 ‘정치권이 결정하는 일’이라며 냉소적인 시각이 많았다”며 “투표권이야말로 민주주의의 기본인 만큼 내 표가 동등하게 존중받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말한다.

지리정보로 선거구 연구한 강휘원 평택대 교수

-헌재가 지난달 30일 선거구 간 인구 편차 비율을 3대 1에서 2대 1로 줄이라고 한 결정을 어떻게 평가하나.
“민주주의 국가에서 당연한 결정이다. 헌법 11조에도 있듯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고, 국민의 정치적 평등은 투표권에서 시작한다. 내 표가 다른 사람의 표와 동등하지 않다는 건 수긍할 수 없는 일이다. 본래 헌재가 2대 1로 해야 한다고 밝힌 건 2001년이다. 다만 당시엔 ‘지금은 어렵지만 앞으로 그렇게 해야 한다’고 했는데, 벌써 10년 이상의 시간이 지났다.”
헌재는 2001년 인구 편차를 3대 1로 제시하면서 “2대 1이 바람직하지만 행정구역 및 국회의원 정수를 비롯한 인구 비례의 원칙 이외 요소를 고려함에 있어 적지 않은 난점이 예상되고 논의가 이뤄진 지 5년밖에 되지 않은 현실을 감안해 앞으로 상당한 기간이 지난 뒤 선택할 수 있을 것”이란 입장을 밝혔다.

-지역 대표성과 농촌 현실을 무시한 결정이란 주장도 나온다.
“정치가들의 생각이다. 오히려 2대 1이 아니라 1대 1이 돼야 한다는 국민도 많다. 내 표가 다른 사람의 반밖에 안 된다고 하면 받아들이겠나. 농촌도 요즘은 통신 발달로 과거와 같은 지역성이 많이 약해졌다. 수도권에 인구가 많으면 교통·교육·범죄 등 해결해야 할 문제도 더 많다. 국회의원은 지역 면적이 아니라 사람을 대표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헌재 결정 이전부터 일찌감치 2대 1 미만을 주장해 왔는데.
“94년 미국에서 박사 논문을 쓸 때 미국의 선거구 획정을 연구했다. 인종 차별 등을 보면서 권리를 평등하게 행사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미국 선거구의 인구 편차는 거의 1대 1이다. 그런 걸 보다 한국에 돌아왔는데 한국에선 5.8대 1도 있더라. 15, 16대 총선 때다. 한국이 지역 대표제여서 미국처럼 1대 1을 하기 어렵다는 걸 감안해도 선거구 인구 편차가 너무 심했다. 95년부터 인구 편차 비율이 2대 1 미만이 돼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나만 그런 게 아니다. 다른 학자도 그런 주장을 했다.”

-그런 주장이 그동안 정치권에 반영되지 않았다.
“정치권에 직접 이야기할 기회는 없었고 학계 세미나 등을 통해 많이 얘기했다. 하지만 학자들조차 ‘선거구 획정은 정치권에서 당리당략으로 이뤄지는데 아무리 뭐라 해도 안 된다’며 상당히 냉소적이었다. 정치권이 결정하는 건데 학자가 기준을 이야기해 봤자 소용없다는 거다. 그래서인지 선거구 획정을 연구한 학자도 많지 않다. 하지만 그런 게 문제다. 일반 국민은 ‘선거구 획정은 정치권이 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관심을 갖기 어렵다. 정치권의 밥그릇 싸움을 감시할 수 있는 곳으로 사회단체도 있겠지만, 지금의 사회단체는 할 일이 많아 선거구 획정까지는 눈을 못 돌린다. 하지만 내 표가 동등하게 존중받으려면 선거구가 합리적으로 획정되는지 살펴봐야 한다. 선거구에서 내 투표권의 무게를 측정할 수 있는 게 인구 측정이다.”

“힘 있는 의원이 연고지역 끌고 가”
-인구 편차 외에 그동안 정치권이 해 온 선거구 획정의 문제점은.
“17, 18대 국회 때 인구 상한선이 넘는 선거구를 분구할 때 생활공동체나 교통·지형을 고려해야 하는데 자의적으로 해 왔다. 선거구를 어떻게 그리느냐에 따라 국민이 의사를 정당하게 표출할 수 있느냐가 달라진다. 예를 들어 나는 A당을 지지하는데 내가 사는 곳이 자의적으로 잘라져 B당 후보에게 유리한 선거구로 포함되면 A당 후보를 뽑을 수 없게 된다. 선거구는 그런 정치적 고려 없이 그려져야 한다. 국회의원이 힘 있다고 이 구역이 저쪽으로 들어가면 정당한 투표권 행사가 되지 않는다.
GIS를 보면 선거구 형상의 조밀성과 연속성을 쉽게 알 수 있다. 게리맨더링을 예방하는 근거도 된다. 선거구 모양새가 길게 늘어지기보다 원이나 정사각형처럼 조밀한 게 바람직하다. 의원이 지역 문제를 챙기기 위해 마을을 다닐 때도 더 낫다. 선거구가 길게 늘어지면 지역 내 공공재에 대한 주민의 접근도가 떨어지고 일체감을 떨어뜨린다. 그런데 선거구가 생활권과도 맞지 않으면서 길게 늘어져 있다면 게리맨더링일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어 과거 평택에선 어떤 동이 을구 생활권인데 갑구에 붙어 있어 문제가 됐다. 사람들은 ‘힘 있는 국회의원이 자신이 당선되기 위해 연고가 있는 지역을 끌고 갔다더라’고 한다. 주민들이 96년 ‘생활권과 대표자 선출지역이 달라 선거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지만 기각됐다.”
당시 헌재는 “선거구가 불합리하게 획정돼 입법적으로 부당한 것이지 소수의 선거권자로 하여금 정치적으로 의사를 반영하지 못하도록 지속적인 차별을 하는 것으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기각 사유를 밝혔다.

-GIS로 볼 때 문제가 되는 선거구가 더 있나.
“17대 총선 때 제주시 북제주군갑 선거구가 북제주군을 선거구 사이에 끼어 있었다. 18대 총선 때 시정된 데서도 보듯 선거구가 다르게 획정될 수 있었는데도 그렇게 한 것이다<그래픽1 참조>. 대구시 달성군 선거구도 그 형상<그래픽2 참조>을 보면 둘로 나눠져 있어 지역 공동체성이나 접근성 관점에선 바람직하지 않다. 19대 국회 때 분구된 파주시와 원주시 선거구도 조밀하지 않게 잘라져 있다. 향후 선거구를 획정할 때 시·군·구와 읍·면·동 행정구조를 나타내는 GIS 지도를 이용해 지역 선거구 형상을 평가해야 한다. GIS 지도를 일반에게 공개하고 공청회 등을 통해 주민 의사를 듣는 민주적 절차도 밟아야 한다. 미국도 선거구를 획정할 때 GIS를 고려한다.”

-여야가 선거구획정위를 국회 산하가 아닌 선관위 산하나 독립기구로 돌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데.
“선거구획정위에 정치인을 배제하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 획정위가 중앙선관위 산하가 되는 것도 괜찮지만 영국처럼 아예 독립기관으로 두는 것도 좋다. 영국은 잉글랜드·스코틀랜드·웨일스·북아일랜드가 독립위원회를 갖고 있다. 위원장은 하원의장인데 명목상이고, 선거구 검토에선 어떤 역할도 하지 않는다. 대법관이 지명하는 고등법원 판사 출신 부위원장이 모든 것을 관할한다. 통계청 직원, 호적등기소 관계자 등이 파견된다. 정치에 전혀 안 휘둘릴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여기서 만든 선거구 획정안이 가장 중립적인 안이라고 평가받는다. 한국에서도 총선도 있고 지방선거도 있으니 상설기관을 둬도 좋을 듯하다. 선거구획정위가 단순히 위원들의 일시적이고 비전문적이며 피상적인 결정을 위한 회합이 아니라 전문성·기술성을 갖춘 상설기관으로 변모해야 한다. 전문성을 기반으로 국회의원·지방의원 선거구 획정까지 다루는 게 좋다.”

해외서도 선거구 획정안 국회가 수정 안 해
-외부 기관에서 안을 만들더라도 국회에서 수정 가능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는데.
“다른 나라에서도 의원이 직접 수정하지는 않는다. 선거구획정위에 수정을 권고할 수는 있다. 국회가 다시 바꿀 수 있게 한다면 지금과 똑같아지는 거다.”

-선거구 인구 하한선을 낮춰 지역구 의원을 늘리고 비례대표를 줄이자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면 국회의원 사이의 갈등은 줄일 수 있겠지만 의원들 이익만 위하게 된다. 비례대표는 지역구에서 당선되기 어려운 여성이나 직능 대표 등이 나올 수 있게 하자는 건데, 그걸 막아 버리게 된다.”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농 복합 선거구제, 석패율제, 개헌 주장도 나오는데.
“농촌과 도시의 기준을 달리하는 것은 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중대선거구도 문제가 많다. 1, 2당이 주로 당선되지 군소 정당은 들어가지 못할 수도 있다. 석패율도 반대한다. 지역구에 떨어졌는데 중진이라고 해서 비례대표로 들어갈 수 있다면 다른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사람을 뽑지 못하게 된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받아들이는 입장이다. 비례의석수를 권역별로 인구 비례에 따라 배분하면 각 지역의 직능 대표 등도 뽑을 수 있게 된다. 개헌은 다른 문제라 말하기 어렵다. 개인적으론 대통령제하에서 여러 제도를 바꾸는 게 낫다고 본다.”

평택=백일현 기자 keysm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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