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학교법의 재개정 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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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족벌체제에 의한 사학운영의 부작용을 막기 위해 작년 2월 개정된「사립학교 법」을 다시 개정해야 한다는 논의가 사학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사학재단 연합회와 사립중등 교장회는 최근 현행 사립학교 법 가운데 재단 이사회의 권한제한, 학교장의 임기제 등이 사학발전을 가로막는 조항이라고 지적, 이들 조항의 개정을 추진중이라는 것이다.
사학재단 측의 주장 가운데는 몇 가지 경청 할 만한 대목은 있다. 가령 학교장의 임기제가 이들의 신분을 보장하지 않아 재임 중 재단 측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 일이라든지, 감독관청의 지나친 간섭 등은 사학의 운영을 저해하는 조항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해서 재단 이사회에 재정·인사권을 주고 설립자와 직계 존 비속의 학교장 취임을 금지한 조항이 폐기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사학재단과 학교운영을 분리시긴 현행 사립학교 법은 일부 사학의 족벌운영의 갖가지 물의 때문에 고쳐진 것이다. 몇 몃 사립대학의 독창적이고 가내 공업적인 사학운영이 곪아 터져 학생 데모의 주 요원인의 하나가 될 만큼 사회문제화 한 것은 다 아는 일이다.
사학재단 측은 사재를 출연해서 학교를 설립했으면 그 자신이나 직계 존 비속이 총·학장에 취임하는 정도의 프리미엄은 당연한 일이고, 그것을 금지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직업선택의 자유를 제한하는 부당한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의 이러한 주장은 일견 그럴듯한 측면이 없지는 않지만, 오늘날 세계적인 교육의 흐름은 물론 특히 우리의 현실에 비추어 당치도 않은 입론이라는 느낌을 금하기 어렵다.
육영사업이 일종의 기업운영이나 투자로 여겨지던 시대는 지났다. 교육을 위해 출연된 사재는 이미 사재가 아니다. 출연하는 그 순간부터 그 돈이나 재산은 국가에 귀속된 것이나 다름이 없다.
물론 설립자의 교육 이념이나 학교를 설립한 취지는 가능한 한 살리는 것이 바람직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족이나 족벌 중심으로 학교를 운영하겠다는 것은 전 근대적인 발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사학운영 문제를 둘러싼 이 같은 진통은 이미 선진국에서는 실험이 끝난 것들이다. 사학이 크게 융성하고 있는 미국의 경우 사학은 사회의 저명인사들이 참여하는 이 사회와 교수회의를 중심으로 운영되고있다.
설립자나 설립자의 직계가족 또는 대리한 사람이 운영에 참여는 하고 있다 해도 재정이나 인사 등 운영의 핵심에는 간여하지 않는 것이 상X식으로 되어있다.
사학의 재단과 운영을 분리시킨 조치는 당시의 상황을 반영했다고도 할 수 있으나 근본적으로 세계적인 조류와 호흡을 같이 할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재단 설립자의 권한을 강화시키자는 사학재단 측의 주장은 합리적인 방향을 이제 와서 거꾸로 돌리자는 얘기와 같다.
우리는 기회 있을 때마다 교육의 자율화와 함께 사학의 발전을 위한 제도개선을 촉구 해 왔다. 행정관청의 지나친 간섭이나 개임이 사학의 위축을 초래하고 자율화 노력의 저해요인이 된다는 것은 무시 할 수 없는 사실이다.
또 사학의 자율은 사학에 대한 관의 간섭을 최소화하는 대신 사학자체의 발언권을 신장하는데서 찾아진다는 것도 긴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학의 자율성을 높인다는.것은 행정의 간여에 대한 것이지, 그것과 설립자의 권한이나 발언권 강화가 같은 것이라는 등식은 설립 될 수 없다고 본다.
각 이익집단이 자신의 권익이나 요구를 제시하고 입론을 펴는 일은 민주사회에서는 바람직한 일이다. 사립학교 법의 문제점이 제기 된 것은 그런 뜻에서 긍정적이다.
이 문제에 대한 논의를 계기로 사학교육의 본질이 무엇인지, 사학을 진흥시키는 보다 효과적인 방법은 무엇인지 등 사학전반의 문제에 대한 논의가 보다 활발히 제기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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