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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과 직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집권 민정당의 당직이 대폭 개편 된데 이어 11명의 장관이 바뀌었다.
원래 전두환 대통령의 용인방식은 쓰던 사람을 일시에 많이 바꾸는 스타일이 아니다. 지금까지 보면 꼭 필요하다고 생각될 때 필요한 최소한의 인원만을 바꾸었다. 그래서 개각이 아닌 보각이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이러한 용인스타일에 비추어 이번 당·정의 개혁은 그 규모에 있어 획기적이라 할만하다.
최근 연발된 대형 사건·사고의 충격을 떨쳐버리고 다시 시작해 보겠다는 각오 같은것이 느껴진다.
그런 자세는 쓰이는 내각이나 참여하는 정당이나 마찬가지여야 할 것 같다.
내각 쪽의 유창순 국무총리를 보면 불과 취임 4개월여에 두 차례나 사표를 냈다.
기박하다고도 할 수 있겠으나 이렇게 짧은 시일에 몇 차례씩 사표를 내게되면 어떤 각오 같은 것이 생길만도 하다.
대통령 제하의 국무총리라든가 내각은 좌표설정이 쉽지 않다.
열심히 이일 저일을 챙기다 보면 부딪치는데가 많고 그렇다고 모나지 않은 처신에 안주하다 보면 겉돌기가 쉽상이다. 그래서 밥그릇을 제대로 못 찾은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 경우에도 자기에게 요구되는 정치적 책임은 져야하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역시 소극적인 처신보다는 적극적으로 챙기고 그런 가운데 책임질 일이 생기면 책임을 지는게 순리일것 같다. 막말로 어느 도깨비에 물려 가는지도 모르게 돼서야 너무 허무하지 않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뜻하지 않게 두차례나 사표를 내야했던 유창순 내각은 앞으로의 국정운영과 통제에 새로운 각오가 있어야겠다.
창당의 주역이 물러난 민정당 쪽에서는 당 개편과 함께 당내 민주주의란 말이 새삼 강조되고 있다.
새삼 당내 민주주의가 운??된다는 것은 그 동안 당내에 권위적인 풍토가 만연했다는 예기도 된다.
실상 그 동안의 민정당의 의사결정 과정은 일방통행 적이란 평을 듣고 있다.
새시대 정치의 슬로건이라 할 개혁의지·깨끗한 정치풍토· 인기에 영합하지 않는 자세 등 주도그룹이 지향하는 이념의 틀에 잡다한 세력들을 맞추다 보니 불가불 하향일변도가 되어버린 감이 있다.
당의 최정예여야 할 국회의원들 중에도 보람을 못 느끼고 소외감을 갖는 사람을 볼 수 있다.
참여해야 할 정당에서 의원들이 소외감을 느낀다면 그것은 건강한 풍토라고는 말할 수 없다. 이러한 소외의식은 공감대의 결여, 냉소적인 자세로 나타난다.
집권당의 풍토는 국회로 이어지고 사회 전반적인 풍조로 확산된다는 점에서 단순한 당내문제일수 만은 없다.
국가적인 진통을 겪으면서나마 집권당이 당내민주주의의 결여란 문제점을 새삼 인식하게된 것은 다행한 일이다.
다만 당내건 당외건 민주주의라고 할 때 민주주의란 용어에 부여하는 의미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변화의 시절에는 특히 좋은 용어들이 많이 동원되는데 그 용어를 제대로 쓰는 것인지 의심스러울 때가 종종 있다.
민주다, 복지다 할때 그 용어의 내포가 만고불면일수는 없겠으나 너무 보편성이 없는 유별난 뜻이어서도 곤란하다.
공산주의자들도 스스로를 민주주의 한다고 하는 판이지만 진정으로 민주주의를 하겠다는 나라에서 민주란 뜻은 대개 특정한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자유민주주의다.
민정당이 새삼 다짐하는 당내「민주주의」도 물론 그러한 바탕을 지녔을 것이며 그것은 국회운영의 민주화, 정치의 활성화로 이어지리라 기대한다.
모두가 민주를 고창하면서도 어딘가 민주 같지 않은 그러한 용어의 혼란, 어휘의 마술이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는 「새시대」에는 없었으면 좋겠다.

<성병욱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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