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장 여인 사건 회오리…정가·관가의 표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예정대로 공식행사>

<청와대>
민정당 당직개편과 내각 일괄사표가 제출된 임시 국무회의가 단행된 20일 하오 4시40분까지는 전두환 대통령의 공식 일정이 진행돼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이러한 정치적 단안이 임박한 낌새가 느껴지지 않았다. 이때부터 약 30∼40분 동안에 당직개편 및 임시 각의 소집과 관련해 유창순 총리와 이재형 민정당 대표가 청와대를 다녀갔다. 극비리에 진행된 일이라 이들이 다녀가고 임시 각의와 당직개편이 발표된 7시 가까이 까지도 공식적으로는 이들의 청와대행이 확인되지 않을 정도.
수석비서관 중에도 각료들이 중앙청에 거의 다 모였을 6시 가까이가 돼서야 관계부처로부터 각의소집을 통보받는가 하면 확인하는 기자들로부터 처음 얘기를 들은 사람까지 있을 정도.
전대통령은 내각과 당에 큰 물결이 일고 있던 하오 6시 반부터 예정대로 새마을 성금기탁 자들과 만찬을 함께 했는데 이 자리에는 노태우 내무와 나웅배 재무장관이 배석했다.
○…개각이 단행된 21일 청와대의 각 수석비서관들은 평상시와 같이 상오 8시를 전후해 모두 출근, 정상집무에 들어갔으나 8시30분으로 예정됐던 정례 수석비서관 회의는 취소됐다. 수석비서관 회의가 취소된 줄 모르고 인사차 비서실에 들른 이한동 전 민정당총재 비서실장은 각 수석비서관실을 돌며『짧은 재임기간이나마 신세가 많았다』고 인사.
9시가 넘어서까지 별다른 본관동정이 건해지지 않자 비서관들은 오히려 기자들을 붙들고 『어떻게 되느냐』『개각의 폭은 어느 정도냐』고 묻기도 했는데 9시20분께 이웅희 대변인이 부름을 받고 본관으로 가자 개각발표가 임박했음을 직감케 했다.

<미리 권 총장 송별연>

<민정당>
민정당의 당직개편은 20일 전격적으로 이뤄졌지만 내부적으로는 이미 지난 16일 예고되었다,
15일 하오 권정달 사무총장과 이종찬 원내총무는 이재형 대표위원을 자택으로 찾아가 시국수습책을 전두환 총재에게 진언해줄 것을 요청했다. 일요일인 16일하오 이 대표위원은 권총장·이 총무를 대동하고 청와대로 올라갔다.
이 대표위원은 금년 초부터 일어난 일련의 사고에 대해 정치적인 일대영단이 필요하다는 점을 전제하고 『민정당이 먼저 당직자 일괄사표를 낼 것이며 이에 따라 내각도 사퇴하는 게 좋겠다』면서 일괄사표를 허락해 달라고 요청. 이에 대해 전대통령은 가타부타 예기 없이『좀 더 두고보자』고 결정을 미뤘다. 이 대표위원은 이밖에 대통령의 담화문 발표·주변의 공직 사퇴 등에 관한 예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이 당직개편에 대한 최종 단안을 내린 것은 19일 소년체전이 열리던 대전에서였다. 이날 상오 당사에 있던 이종찬 총무는 갑작스런 부름을 받고 상오 11시 우중에 승용 차편으로 대전으로 향했다.
이 총무는 충남 도지사실에서 비밀리에 대통령으로부터 일괄사표를 제출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전대통령은 구체적으로 인선내용까지는 말하지 않았지만 대체적인 범위는 통고한 것으로 알려졌는데『특별히 권 총장의 입장을 배려해 주라』고 당부했다는 것. 전대통령과, 이 총무는 동차를 함께 타고 상경하면서 많은 얘기를 나눴다.
이 총무는 상경 즉시 이 대표위원과 권 총장에게 대통령의 뜻을 전달. 또 중앙집행위원이상 당직자들에게 20일 상오 플라자호텔에 극비로 모이라는 지시도 내렸다.
19일 저녁 종로의 B음식점에서 이 총무, 이한동 총재비서실장, 윤석순·이상재 사무차장,봉두완 대변인 등이 모여 권 총장을 위한 환송연을 가졌다. 모두 애써 흥을 돋웠고 권 총장도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불렀다. 감을 잡은 한 당직자는『우리도 마지막 탱고나 부르자』면서 술잔을 기울였다. 모 당직자는 이날 하오부터 몰래 짐을 챙기기 시작.
○…20일 상오 8시 플라자호텔 21층 연실에는 이재형 대표위원을 위시한 당직자 전원이 모였다. 이대표의 설명에 따라 각자 준비된 사직서에 사인을 했다. 사직서는『올해 잇단 사고에 대해 정치적·도의적 책임을 진다』는 내용.
이 대표위원이 먼저 빠져 나와 평상시처럼 당사로 출근했고 권 총장·나석호 정책위 의장은 따로 나눠 당사에 들렀다 월간경제동향 보고회가 열리는 종합청사로 떠났다.
보고가 끝난 후 권 총장은 점심좌석이 이미 마련되었으나『내 자리는 빼달라』고 한 후 그냥 밖으로 나갔다.

<이발하겠다며 나가>
당직자들은 일체 사표제출내용을 함구했는데 봉두완 대변인은 기자들을 피하느라 이발소에 갔다가 명동성당의 황해도민 기도회에 가는 등 밖으로만 돌았다.
이 대표위원은 11시30분께 신임 사무총장으로 내정된 권익현 의원을 대표위원실로 불렀는데 『일본에 있는 정각사에 간다기에 장 보살(장영자 여인)을 만나 본적이 있느냐고 농을 해 한바탕 웃었을 뿐』이라고 시치미.
이 대표위원은 하오 4시30분께 수행비서관도 남겨두고 눈에 띄지 않게 청와대로 올라갔는데 장경자 보좌역은 『안에서 잠시 낮잠을 주무신다』고 안개를 피웠다.
하오 6시15분께 이 대표위원이 누런 봉투를 들고 돌아오자 당직 개편설이 퍼졌다. 이 총무와 윤·이 차장이 들어가고 곧이어 장 보좌역이 백지와 국회수첩을 들고 들어갔다. 뒤이어 정종택 정무장관과 봉 대변인이 들어섰다.
하오 7시 봉 대변인은『대변인으로서 마지막으로 기자들을 흐뭇하게 해주겠다』며 발표문을 낭독.
권정달 총장은 외국손님을 접견한 후 하오 5시께『이발을 하겠다』며 당사를 나가 돌아오지 않았다.
창당의 주역이 빠진 당사는 착잡한 분위기였고 서둘러 당을 찾아왔던 몇몇 의원들은 할말을 잊은 듯 했다.
이 대표위원은 배성동 정책연구실장을 불러『당내 민주주의를 활성화하는 방안을 최대한 찾아라』고 따로 지시했다.
○…당직에 대한 최종 인선은 이 대표위원이 20일 일괄사표를 제출한 후 전대통령과 함께 1시간여에 걸쳐 논의.
권익현 의원을 사무총장으로 지명한 것은 전 대통령이었고 진의종 정책위의장 지명때는 전대통령이『지난번 당직개편 때 이 대표위원이 추천한 인물이죠』하면서 적었다는 것.
이 대표위원은『당직 일괄사표를 주장하면서 어떻게 새 인물을 천거했겠느냐』고 했지만 이 대표위원이 평소『똘똘한 사람』이라고 평했던 남재두 의원이 총재비서실장에 기용된 점등으로 미뤄 이 대표의원의 의견이 많이 참작된 듯.
이 대표위원은 특히 권정달 총장의 퇴진에 대해『결코 장 여인 사건과는 상관이 없으며 절대로 돈을 받거나 할 사람이 아니다』라고 변호하면서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16일 나한테 와서 대통령에게 시국수습책을 진언하자고 요청했겠느냐』고 했다.
임명 된지 얼마 안된 나석호 정책위 의장과 이영동 당 총재비서실장의 사표수리는 이들이 권 전 총장이 천거한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팀웍 조정이란 차원으로 보는 눈이 많다.

<중앙청>
전대통령과 유창순 국무총리간에 내각의 일괄사표제출문제가 처음 거론된 것은 월간경제동향보고 후 오찬을 전후해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유 총리는 장 여인 사건이 터진 직후 조영길 비서실장 등 측근에게『내가 취임한 후 계속 큰 사건이 터지니 내가 부덕한 모양』이라며 우울해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의령사건 때 사의를 표명했다가 반려된 직후 다시 사의를 표명하기도 거북해 검찰수사가 마무리 될 때까지는 유보했다는 것.

<경제보고 때 첫 거론>
유 총리는 이날 하오3시 한미수교 1백주년 미국 경축사절단 일행을 위한 다과회를 예정보다 앞당겨 20분만에 끝내고 3시50분께 비서진에 『치과에 다녀오겠다』는 말만 남긴 채 외출. 1시간 반만에 돌아온 유 총리는 하오 5시20분 김용휴 총무처 장관에게 긴급임시국무회의 소집을 지시했다.
유 총리는 밖에 나가있던 시간에 삼청동 공관에 잠시 들렀던 외에는 행방이 확인되지 않았는데 그 시간에 전대통령으로부터 최종 결심을 들었다는 얘기다.
○…개각이 보도되기 시작한 19일부터 각 장관들은 사태의 진전을 체크하고 정보교환을 위해 서로 빈번한 연락을 가졌다.
이선기 동자부 장관은 19일 저녁 김용휴 총무처장관을 찾아와 장시간 밀담을 나누었고 20일 하오에는 이광표 장관이 김 총무처 장관을 찾았다. 또 각 장관 비서실에서는 총무처장관실과 총리비서실에 사태의 진전을 전화로 계속 체크하는 등 초조한 반응을 보였다.
하오 5시까지만도 총리의 21일 일정에 정례 국무회의가 들어있어 내각 총 사퇴가 21일이 아니겠느냐는 추측들이 나돌았으나 총리가 돌아오면서 사태가 급진전, 달라졌다.
임시 국무회의가 워낙 갑자기 소집되는 바람에 청사가 중앙청에서 먼 권중동 노동장관과 이종호 원호처장은 지각 출석했고 검찰수사 발표로 일이 밀려있던 이종원 법무장관, 대전 소년체육대회에 내려갔던 이원경 체육부장관 등은 불참.
또 외유중인 이한기 감사원장과 서석준 상공장관도 참석치 못해 불참자는 이날 밤중으로 직·간접의 경로를 통해 김 총무처장관에게 사표를 전달했다.
국무회의에서 유 총리가『일련의 사태에 대해 전 국무위원은 국민에게 책임을 통감할 줄 알고 있다』며 일괄사표를 제의, 이견이 없자 미리 준비한 사직원을 배부.
각자에 배부된 사직원은『소직 금번 사정에 의하여 사직코자 하오니 청허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간단한 내용이 미리 적혀 있었고 여기에 장관이 자필로 직함·성명을 쓰고 날인만 해 회의는 불과 7분만에 끝났다.
국무회의가 끝난 후 유 총리는 굳은 표정으로 곧장 삼청동 공관으로 직행, 일체 외부와의 접촉 없이 법무부가 보낸 수사결과 보고서만을 검토했다.
○…유창순 국무총리는 21일 일괄제출 된 국무위원들의 사표를 갖고 상오 9시 20분쯤 혼자서 청와대에 올라가 40분만에 내려왔다.
유 총리는 이날 평상시와 같은 시간에 출근, 금용휴 총무처 장관과 잠시 만났고 곧이어 김종호 건설장관이 찾아와 밀담.
유 총리는 평시와 같이 비서진과 정례 간부회의를 가진데다 청와대로 직접 올라간 점을 들어 주위에서는 유임이 확실하다고 안도하는 분위기.
개각 등 처리에 총리와 언제나 동행하던 김 총무처장관이 이번에 빠짐으로써 경질설이 나왔고 한편 금진호 상공부 차관이 아침 일찍 김 총무처장관을 방문해 금 차관이 입각하는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돌았다.
유 총리는 청와대에 다녀오면서 『대폭적인 개각으로 11명이 바뀌게 됐다』면서 자신의 유임여부는 발표 때까지 말하지 않겠다며 곧장 집무실로 들어갔다.

<내일 출근해야 하나>

<기획원>
20일 임시국회에서 사표를 제출하고 나온 김준성 부총리는 기획원에 돌아오자 비서실장에게『내가 처음이라 몰라서 그러는데 내일도 출근해야 되느냐』고 묻고『오늘이 마지막일지도 모르니 잠시 이야기라도 나누자』며 집무실에서 기자들을 맞이했다.
그는『사채파동에는 경제팀장인 내가 책임을 져야하며 물러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하면서 씁쓰레한 표정.『경제각료로서 제대로 평가받으려면 적어도 1년 이상은 집무해야 한다. 나도 어떻게 잘 해보려고 했지만 이번에 4개월 반만에 불명예 제대를 할 것 같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특히 조달청의, 외미 도입사건에 시달렸던 김 부총리는『지난 4개월이 꼭4년의 세월을 보낸 것 같다』면서『내가 오늘 사표를 쓸 줄 미리 알았더라면 통화정책 등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털어놓지 말걸 그랬다』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각료들이 사표를 내고 왔다는 소식이 나들자 늦게까지 사채파동수습 및 경기부양에 관해 후속조치를 마련하고 있던 기획원 간부들이 결재판을 들고 집무실에 들어와 김 부총리의 표정을 읽기에 바빴다.

<나 재무 퇴임설 파다>

<재무부>
20일 하오 5시40분 비상국무회의가 열린다는 긴급통보가 오자 재무부 직원들은『올 것이 왔다』『나웅배 장관이 결국 속죄양이 되는구나』면서 모두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비상 각의가 열리면 내각사표가 있을 것이고 그럴 경우 장 여인의 사건성격상 재무장관의 인책사퇴는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게 상식처럼 되어 있었기 때문.
나 장관은 이날 하오 혼자서 집무실에 앉아 있다가 비상 국무회의 연락을 받았는데 통보를 전해주는 비서에게『뭐 그렇게 비감한 표정을 짓나』면서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짓더라고.
나 장관은 내각사퇴설이 보도된 이후 간부들에게 『생각지도 앓은 재무부 장관을 한 것만으로도 영광이다. 재임 4개월 반 남짓한데 나보다도 더 짧은 사람이 있었다』고 벽에 걸린 역대 장관사진을 가리키기도 했다는 것.
역대 재무부 장관 중 최단명은 61년 6월22일부터 7윌22일까지 만 한달의 김유택씨와 바로 그 전임 백선진씨 (61년 5월20일∼6월22일)의 한달 이틀이다.
나 장관은 비상 국무회의가 끝난 다음 6시 30분부터 새마을성금을 낸 기업인을 위한 청와대 만찬(이미 예정되어 있었던 것)에 노태우 내무부 장관과 함께 참석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