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인 「카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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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미국 대통령 선거는 11월에 실시되고 당선자는 이듬해 1월에 취임한다. 그 사이의 어느 날 남미의 한 무관이 미국의 저명한 칼럼니스트「아트·부크월드」에게 물었다.
『「레이건」의 취임식 때「카터」는 무얼 하게 될까요.』
『아마, 「레이건」의 취임 선서를 옆에 앉아 듣게 될 겁니다.』
『혹시 「레이건」의 정적으로 몰려 투옥되지 않을까요.』 『아니지요. 미국에선 투옥대신 후임자가 자기 책상을 차지하는 모습을 봐야하는 고통을 주지요.』
물론 이것은 실재로 있었던 문답이 아니고「부크월드」특유의 재담이다.
지금 「카터」는 그 고통을 유유자적 「즐기고」있다. 향리 플레인즈 마을로 곧장 은둔한 「카터」의 생활이 최근 외지에 담담한 필치로 소개됐다.
아침 5시에 기상, 포도주스를 한잔 마시고 서재로 들어가 회고록을 집필한다. 제목은 『신의를 지키며 (Keeping Faith)』다.
7시쯤 되면 딸「에이미」의 바이얼린 연습소리틀 듣고 아침이 준비된 걸 안다.
회고록 집필은 그의 정상 일과다. 백악관시절 알뜰하게 모아놓은 일기, 구슬 메모, 녹음 등이 6천여 페이지에 이른 것을 정리하는 작업이다. 그는 회고록 집필을 통해 대통령 시절을 반성해 본다. 예를 들어「팔레비」왕의 국내 경치에 일찍 주의했어야 한다고 느낀다.
방문자에게 공개한 77년의 일기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팔레비」왕의 백악관 방문을 맞아 이란 학생들의 반대데모를 진압하는 최루가스가 눈을 쏘는 가운데 그를 서재로 인도했다. 단독 대좌에서「카터」는 이란 국내의 민권을 좀 더 향상시키라고 질책했다. 이 질책에 「팔래비」는『당황했다』라고 그날 일기엔 적혀 있다.「카터」는 틈틈이 부인「로절린」과 함께 예의 조깅, 자전거 하이킹을 즐긴다. 회고록 집필에 지치면 옆 채에 마련된 창고로 가서 손수 가패를 만든다. 코피탁자, 의자 등 그의 솜씨는 전문 목수에 육박한다. 호두나무를 즐겨 재료로 쓴다. 그의 일과 중 두번째 중요한 일이 바로 이 가패 만들기다.
그는 거의 외출을 삼간다. 일요일의 교회 출석, 6주일만의 이발이 고작. 옷도 거의 주문해 입는다. 외부와의 연락도 가급적 끊었다.
공화당원은 물론 민주당원도 그와의 접촉을 싫어한다.「카터」는『패배의 상징』이기 때 문이다.
최근「US·뉴스·앤드·월드·리포트」지의 역대 대통령 인기조사에서「가장 무능한 대통령」으로「닉슨」이 2위,「카터」가 10위를 차지했다. 그래도「카터」는 태연하다.『내가 취한 정책이 정당하다는 것에 나는 자신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아마, 이제 그의 안목은 훨씬 더 넓어졌을 것이다. 인생의 완숙을 향유하는 전직 대통령의 존재는 생각만 해도 왠지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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