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무분별한 대사면, 법치 흔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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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열린우리당의 문희상 의장이 광복절 대사면을 대통령에게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생계형 범죄 위반 사범이나 도로교통법 위반자 등 경미한 범법자들과 불법 대선자금 사건 관련자들을 대상자로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당은 이번 대사면 추진이 광복 60주년을 맞아 국민 대통합을 이루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단순 과실 범죄 및 행정 법규 위반자들에 대한 일반사면을 검토 중이라는 것이다. 사회 현안들을 놓고 사사건건 충돌하는 상황에서 이념.지역.계층 간의 갈등을 풀어낼 수 있는 통합조치는 필요하다. 그러나 사면이 국민 통합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의문이다. 이 때문에 여권의 대사면 검토가 불법 대선자금 관련 정치인들을 구하기 위한 '물타기용'이란 지적이 나온다. 그런데도 여당 인사들은 '법의 형평성'을 들어 정치인들을 제외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으니 기가 막힌다.

물론 사면권은 헌법에 규정돼 있는 대통령의 권한이다. 그렇다고 이를 마음대로 행사해선 안 된다. 사법권을 약화시킬 뿐 아니라 국민의 준법의식을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범죄의 종류를 정해 이에 해당하는 모든 사람에게 혜택을 주는 일반사면의 경우 가벼운 법규 위반자를 대상으로 하더라도 법에 따라 이미 벌금이나 범칙금을 낸 사람만 손해를 보는 결과를 초래한다. 더구나 신용불량자까지 사면 대상에 포함한다면 누가 빚을 갚으려 하겠는가. 선거용 선심이라는 비판이 나오게 돼 있다.

야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사면법 개정 논의가 진행 중이다. 사면 단행 때 대상자의 명단.죄명 등을 사전에 국회에 통보하고, 형 확정 이후 일정 기간이 지나지 않은 사람에 대해선 국회의 동의를 얻도록 하는 것 등이 포함돼 있다. 일부에선 부정부패 사범이나 공직선거 관련법 위반자는 아예 사면.복권 대상에서 제외하자는 방안까지 제시하고 있다.

법을 지킨 사람이 손해를 본다면 이는 법치가 아니다. 사면법을 고쳐 남용의 소지를 차단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