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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와의 전쟁' 벌이는 청와대…40년 전 박 대통령도 쥐 때문에 고통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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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청와대 위민관의 사무실. 먹다 남은 과자를 다시 먹으려던 여직원이 비명을 질렀다. 과자 봉지 속에 생쥐 한 마리가 들어가 과자를 갉아먹고 있어서였다. 여직원의 비명소리에 달려온 남자 행정관이 과자봉지 입구를 틀어막아 쥐를 산 채로 잡았다. 포획된 쥐는 한동안 사무실 직원들이 다 돌려본 뒤에야 버려졌다고 한다.

청와대가 ‘쥐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1970년대도 아닌, 2014년 대한민국 청와대에서다. 청와대 직원들이 근무하는 위민1·2·3관의 구석 곳곳에는 쥐잡이용 끈끈이가 놓여있다. 끈끈이 위에는 초코파이부터 멸치까지 쥐를 유인하기 위한 다양한 먹이가 뿌려졌다. 한 행정관은 지난 2월 자신의 책상 옆에 놓인 스마트폰 크기의 물체 위에 멸치가 있길래 누가 먹다가 흘린 줄 알고 버리려고 했다고 한다. 우산 끝으로 끌어내려 했는데 달라붙길래 봤더니 끈끈이였다고 한다. 이 행정관은 “어디 가 부끄러워서 청와대 사무실에 쥐가 나온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며 “쥐가 옮기는 병에 걸리는 건 아닐지 걱정이 될 정도”라고 푸념했다.

청와대에 쥐가 출몰하는 건 비서동의 노후화가 심각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민정수석실이 있는 위민2관은 69년 완공돼 45년이 지났고, 홍보수석실이 있는 위민3관은 72년 지어서 42년이 됐다. 두 건물은 안전진단에서 D등급(재난위험시설)을 받을 정도로 낡았다. 위민2관은 지난해 6월 경제수석실 천장이 내려앉으며 생긴 압력으로 유리벽이 깨지기도 했다. 비서실장실과 정무수석실이 자리잡은 위민1관은 가장 최근인 2004년에 지었지만 위민2·3관에 서식하는 쥐의 활동반경에 속한다고 한다.

청와대와 쥐의 악연은 40여년 전으로도 거슬러 올라간다. 70년대 당시 영애(令愛)이던 박근혜 대통령의 관저(현재의 관저는 1990년 10월 신축) 방에는 쥐가 수시로 출몰해 천장의 벽지가 뜯기고 스티로폼이 드러날 정도였다고 한다. 경호실 직원은 쥐가 나타나면 공기총을 들고 부산하게 뛰어다녔다고 한다. 당시 농림부에서 쥐잡기로 유명하던 공무원은 청와대 쥐를 잘 잡아 공로를 인정받았다는 일화도 있다. 그래선지 해당 공무원은 퇴직 후 방제회사를 차려 굴지의 회사로 키웠다고 한다.

청와대 관계자들에 따르면 쥐 문제와 관련해 건물을 완전히 뜯어고치지 않고는 뾰족한 수가 없다고 한다. 문제는 재정난 속에 위민 2·3관을 신축하거나 리모델링할 계획도, 예산도 없다는 점이다. 게다가 청와대 건물 증·개축 얘기가 나오면 자칫 여론의 비난을 살 수도 있다. 청와대 비서들로선 당분간 쥐와의 전쟁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

허진 기자 b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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