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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한 수학여행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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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교실에서의 수년간」을 마감하면서 급우들과 어울려 여행을 한다는 것은 분명히 즐거운 추억거리고 교육적으로도 권장할 만한 일이다.
특히 금년부터 수학여행이 학교장 재량에 맡겨지면서 각급 학교의 수학여행은 크게 늘어나고 있다. 시골학생들의 서울여행 숫자 못지 않게 경주를 비롯한 명승지로 몰리는 학생들 또한 금년 봄 들어 몇만 명을 헤아리게 한다.
교육적으로 보아 수학여행이 필요하다는 데는 원칙적으로 이론이 없다. 학생 상호간, 학생과 교사간의 이해가 이루어지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고 열등의식이나 정서가 메마른 학생들이 마음의 문을 열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수학여행의 가장 뜻 있는 일은 조상의 얼이 깃 든 역사의 현장을 실제로 보고 귀로 들으며 산 체험을 한다는데 있다.
그러나 수학여행을 결행하는 데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은 것 또한 사실이다.
가뜩이나 레저인구가 급증하면서 관광객이 들끓는 터에 수많은 학생들이 여기에 끼어 드니 명승지나 관광지는 초만원이 될 수밖에 없다. 그 틈바구니에서 학생들이 겪는 고생이나 일부 가난한 학부모들의 부담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은 떠나서부터 돌아오기까지의 안전문제일 것이다.
수학여행의 교육적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당국이 이를 금지한 까닭은 바로 안전 때문이었다. 장항선 모산 건널목에서 수학여행 버스가 열차와 충돌, 수십 명의 사상자를 낸 참사로 인해 그동안 수학여행이 통제를 받았었다.
수학여행이 자율화하면서 이와 비슷한 사고가 나지 않을까 가슴 죄는 것은 모든 학부모들의 공통된 심정일 것이다.
며칠 전 경주 토함산에서는 관광전세버스가 낭떠러지로 굴러 11명이 사망하고 수10명이 다치는 끔찍한 사고가 났으며 작년 서울 무악 재에서는 한 관광버스가 인도로 돌진, 교통질서 캠페인을 위해 도열했던 여학생을 다치게 한 사고를 냈다.
두 사건 모두 사고원인은 한 마디로 관광버스의 무리한 운행에 있었다.
성수기를 맞은 관광버스의 무리한 운행일정으로 운전사들은 과로하기 쉽고 차량정비를 제대로 하기 어려운 데다 과속까지 하게 되니 사고의 가능성은 커지는 것이다.
수학여행의 경우 일단 사고가 났다 하면 그 규모가 클 것이므로 미리 미리 안전대책에 신경을 써야 하는 데도 그렇지 못한 것이 우리의 정서이다.
대부분의 학교는 경비를 줄이기 위해 버스 한 대에 정원의 배에 가까운 60∼70명을 태우는 것이 보통이고 심한 경우 1백 명까지를 태워 러시아워의 시내버스를 방불케 한다는 것이다.
근거리 소풍길이라면 몰라도 장거리 수학여행에서 이처럼 정원보다 많은 승객을 태우고 다닌다는 것은 사고위험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뜻한다.
더욱이 고속도로를 운행할 때는 반드시 안전벨트를 매도록 되어 있지만 대부분 전세버스에는 아예 안전벨트가 없을 뿐 아니라 설사 있다 하더라도 인원이 이처럼 많아서는 안전벨트는 쓸모가 없다.
수학여행을 통제 6년만에 자율화한 것은 잘한 일이지만, 사고위험에 대비해서 사고를 예방토록 지도하는 것은 당국의 책무다.
큰 사고를 만나 그 때 가서 허둥지둥 대책을 마련한다고 법석을 띠는 일은 이미 늦다. 안전한 수학여행은 우리 모두의 귀여운 2세들의 안전과 관계되는 문제가 아닌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의 우를 되풀이하지 말고 비용이 더 드는 한이 있어도 2세들의 여행길이 안전하고 교육적으로 값어치가 있는 여행이 되도록 안전대책을 미리 세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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