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꽝도 장애아도 다 함께 … 재밌는 공놀이로 체력·인성 '쑥'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4면

서울성내초등학교 4학년 6반 학생들이 체육 시간에 피구를 변형한 뉴 스포츠인 ‘스캐터볼’을 즐기고 있다. 공이 부드러워 맞아도 아프지 않고, 주사위에 따라 술래가 정해지므로 참가자 모두가 쉽고 안전하게 참여한다. 김수정 기자

“바람이 엄청나게 불어! 왼쪽으로 던져!” “진성아, 넌 할 수 있어. 파이팅!” 24일 서울 강동구 성내초등학교 4학년 6반의 5교시 체육시간.

학생들이 원반을 던져 골대 안에 집어넣는 데 열심이다. 골프와 원반던지기를 결합한 뉴 스포츠인 ‘디스크 골프’다. 아이들은 차례대로 전략을 세워가며 진지한 표정으로 원반을 골인시키는 데 집중한다. 한편 다른 곳에선 학생들이 손을 맞잡고 강강술래를 하듯 동그란 원을 만들고 있다. 술래가 던진 공 모양의 주사위가 떨어지면서 노란색이 나오자 아이들은 원 밖으로 전속력을 향해 내달렸다.

동시에 노란색 팔찌를 차고 있던 여학생이 재빠르게 공을 잡아채고 ‘스캐터’를 외친다. 달리던 아이들이 순간 멈추고 스캐터를 외친 아이가 공을 힘껏 던진다. 피구를 변형한 뉴 스포츠인 ‘스캐터볼’이다. 푹신한 스티로폼의 공은 맞아도 아프지 않다. 체육시간 40분이 훌쩍 지났는데도 운동에 빠진 아이들은 지칠 줄 모른다.

체육시간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운동을 잘하는 한두 명이 주인공은 아니다. 체력이 약한 아이, 체육시간을 기피하던 여학생 모두 빠짐없이 적극 참여한다. 성내초등학교 체육시간의 비밀은 뉴 스포츠에 있다. 이 학교 조태원 교사는 “기존의 축구·야구·골프·테니스 같은 운동을 변형·결합해 규칙은 유연하게 하면서 누구나 게임처럼 쉽고 재미있게 즐기는 운동”이라고 설명했다.

야구를 변형한 ‘티볼’은 투수가 던지는 공 대신 T자형 막대 위에 놓인 공을 때린다. 손바닥으로 배드민턴을 치는 인디아카, 탁구공 크기를 키워 쉽게 칠 수 있게 한 라지볼도 있다. 기존 스포츠의 운동효과·재미를 그대로 가져오면서 어린이·체력이 약한 사람·노인까지 다양한 이가 손쉽게 즐길 수 있다.

소외되는 사람 없는 참여형 스포츠

왼쪽부터 킥런볼·디스크골프·플로어볼.

뉴 스포츠의 강점은 첫째,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낸다. 성내초 김은숙 교감은 “체력 평가에서 4·5등급을 받은 저체력 학생을 대상으로 주 1회 뉴 스포츠에 참여하도록 했다”며 “운동에 관심조차 없던 아이들이 재미를 붙이더니 운동량이 늘면서 체력이 덩달아 올라가는 효과를 톡톡히 봤다”고 말했다.

둘째, 소외되는 사람 없이 참가자 모두가 동등하게 참여한다. 야구와 발야구를 결합한 킥런볼을 예로 들면 수비를 할 때 참가자 전원이 최대한 간격을 좁히면서 일렬로 서서 다리 사이로 공을 전달해야 한다. 한 사람도 쉬고 있을 겨를이 없다. 실력이 월등한 한두 명의 아이가 공을 독점하지도 않는다. 성내초 최영수 교사는 “혼자 한다고 점수가 나는 것이 아니라 전체가 협동했을 때 다음 단계로 진행하는 것이 뉴 스포츠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셋째, 부상 위험이 낮아 안전하다. 한국스포츠개발원 노용구 박사는 “많은 체력을 요구하고 승부를 내는 것이 기존 스포츠였다면 뉴 스포츠는 장비를 개량해 기술 장벽을 낮췄다. 경쟁보다는 협력을 기반으로 한다”고 말했다. 딱딱한 도구와 지나친 경쟁, 과한 체력 소모는 부상으로 이어지기 쉽다.

뉴 스포츠의 도구는 대부분 말랑말랑한 스티로폼이나 천, 플라스틱으로 만든다. 성내초 오정수 교사는 “공에 맞아도 아프지 않기 때문에 피하거나 주춤거리지 않는다. 두려움이 없어지면서 더 적극적으로 운동에 참여하는 선순환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체력·창의성 기르고 정서 순화 효과 톡톡

뉴 스포츠가 학교에 도입되면서 운동의 외연이 확장되고 있다. 먼저 뉴 스포츠를 접한 아이들의 생활습관이 변한다. 성내초등학교 5학년 이경주양은 “학원이 끝나면 친구들과 공터에서 공을 가지고 놀기도 하고, 스피드스태킹 시합을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스피드스태킹은 12개의 컵을 가지고 오른손과 왼손을 번갈아 사용하면서 정해진 규칙대로 쌓고 내리는 스포츠다. 집중력·순발력을 기르는 속도감 있는 뉴 스포츠다. 이양은 “뉴 스포츠를 알기 전에는 TV와 컴퓨터 게임이 취미였다”고 말했다. 학교 체육시간에 접했던 운동이 일상에서 즐길 수 있는 생활체육으로 발전한 것이다. 노 박사는 “운동은 갑자기 필요할 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 녹아들어야 한다. 어릴 때 운동 습관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스스로 흥미를 느끼고 운동에 적극 참여하면서 체력뿐 아니라 배려심·협동심·친화성 같은 인성 발달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성내초등학교가 뉴 스포츠 도입 전후 학생들의 체력·집단 친화 형성 관계를 비교했다. 그 결과, 페어플레이의 의미를 알고 실천하려고 노력한다는 학생의 비율은 44%에서 90%로 급증했다. 친구들과 잘 지낸다(46%→ 84%), 친구를 배려하고 존중한다(39%→54%), 체육수업을 하면 친구들과 관계가 좋아진다(54%→75%)고 답하는 비율이 높아졌다.

뉴 스포츠를 특화한 학급과 그렇지 않은 학급의 체력 향상 지수도 차이가 났다. 특화반은 심폐지구력·유연성·근지구력·운동기능이 뉴 스포츠 도입 전보다 평균 10% 이상 향상됐다. 반면에 그렇지 않은 학급은 체력이 제자리였다. 노 박사는 “스포츠는 인생의 축소판으로 불린다. 타인을 배려하고, 자신의 역할에 책임을 지고 공정하게 경기하는 것을 배워나가는 과정에서 청소년에게 신체활동을 넘어선 교육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스포츠 강사 윤종현씨는 “학생들 스스로 상황에 맞게 규칙을 만들거나 변형시킨다. 창의력과 자율성을 증진시키는 것 역시 뉴 스포츠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뉴 스포츠는 운동에서 소외되기 쉬운 유아부터 노인·장애우도 참여할 수 있다. 노용구 박사는 “미국에서는 재활치료 보조요법으로 활용한다”며 “정규 스포츠에 참여하기 힘든 이들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운동”이라고 말했다.

이민영 기자 tia@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