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어버이날 '깜짝 이벤트'] (2)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3면

***'감동 선물'#2 --- 자원이네

"아빠가 꼭 아이 같더라고요. 막 흥분해서 어쩔 줄 모르시고…. 아빠가 좋아하시니까 저도 정말 좋던데요."

자원이(10.양전초4)는 아빠가 평소답지 않게 들떠하는 모습이 신기한 모양이다.

웬만한 일에는 평상심을 잃지 않는 자원이 아빠 이종웅(44)씨가 밤잠 설치며 흥분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봄과 여름이 오락가락하는 4월의 마지막 일요일 오후, 온 가족이 특별한 봄소풍을 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아빠를 들뜨게 만든 곳은 자원이가 좋아하는 롤러코스터 타는 놀이공원도,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명승지도 아니었다. 수십년을 그 자리에 서있는 서울 성북구 숭인초등학교였다. 아빠의 개구쟁이 시절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추억의 모교다.

자원이 아빠는 졸업 후 30여년 동안 한번도 모교를 찾지 않았던 무심한 졸업생이었다. 이번 모교 방문은 올해 자원이가 특별히 준비한 어버이날 선물, 일명 '아빠와 추억만들기 프로젝트'다.

"놀이공원에 가도 늘 오빠랑 나만 신나게 놀고, 아빠는 멀찌감치 떨어져서 구경만 하세요. 놀이공원에 가도 몸만 같이 있지, 아빠랑 정말 친해질 기회는 없잖아요."

그래서 자원이가 생각해낸 게 바로 모교 방문이다. 자원이랑 같이 있어도 할 얘기가 많지 않은 아빠가 초등학교 때 얘기만 나오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고는 문득 떠올리게 된 이벤트다.

예상대로 아빠는 자원이 생각을 듣자마자 마음이 들뜨는 걸 감추지 못했다. 창고를 구석구석 뒤진 끝에 빛바랜 국민학교(초등학교)졸업앨범을 기어이 찾아냈다. 앨범엔 아빠의 앳되고 장난기 어린 어린 시절이 담겨 있었다. 자원이로서는 처음 보는 모습이다.

"우리 반에서 제일 잘 생긴 한중이보다도 더 잘 생겼다"는 말에 아빠는 웃음을 지우지 못했다. 이 말에 용기를 얻었는지 아빠는 옛날 얘기를 한아름 풀어놓았다.

"6학년 때는 성적 순으로 앉았는데 아빠는 맨 앞줄이었어"는 시작에 불과하다."이건 정말 비밀인데, 선생님이 나더러 시험문제를 직접 내라고 한 적도 있어"라는 확인할 수 없는 주장까지 등장했다.

부녀간의 대화를 듣기만 하던 엄마 임정옥씨는 "왜 이런 생각을 진작 못했나 몰라요.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었는데도 한번 와보지 않았다니…. 내년 어버이날엔 제가 다니던 중학교에 한번 다같이 가봐야겠어요"라고 살짝 시샘한다.

자원이도 "이렇게 와보니까 아빠랑 할 얘기가 많아서 너무 좋다"면서 "내년엔 꼭 엄마 학교에 가보자"고 슬며시 엄마 기분을 맞춰준다.

학교를 한바퀴 둘러보고 나오는 길에 자원이는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운동장이 엄청 클 줄 알았어요. 그런데 우리 학교보다도 작은 것 같아요. 여기가 정말 아빠가 다니시던 학교 맞아요?"

덩치 큰 아빠가 다니던 곳이니 그만큼 학교도 클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작아진 운동장만큼 아빠와의 거리도 이날 좁아졌을 것이다.

안혜리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사진설명>
자원이(中)의 올해 어버이날 선물은 부모님과 함께 모교 찾아가기다. 이날 자원이는 아빠가 졸업한 숭인초등학교의 한 교실에 앉아 아빠의 졸업앨범을 보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김경빈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