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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쟁과 대안: 금리 올려야 하나

"두 토끼 다 잡긴 어렵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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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사회=부동산 급등이나 경기와 관련해 금리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현 금리 수준이 적정한가요. 또 전망은 어떤가요.

▶조영무=시중금리는 완만하게 오를 것으로 예상합니다. 유가 상승 등으로 물가 압력이 높아지고, 미국 금리 인상에 따른 금리 역전으로 정책금리 인상의 필요성도 강해질 것입니다. 기업 투자가 하반기에 다소나마 살아나 회사채 발행이 늘고 정부가 경기대책용 적자공채를 발행할 가능성이 커져 공급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는 점도 상승 요인입니다.

▶ 콜금리 인상 여부를 놓고 지난달 30일 본사 회의실에서 열린 좌담회에서 전문가들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정원석 한일투자신탁 채권운용본부장, 김경원 삼성경제연구소 금융담당 상무, 김정호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김정수 중앙일보 경제연구소장(사회).

▶정원석=중기적으로 정책금리가 가만있어도 실세금리가 상승하겠지만 결국 다시 하향 안정될 것으로 봅니다. 전 세계적으로 공통된 현상이지만 국내에도 돈이 넘치는 상황입니다. 성장 잠재력, 특히 인구 증가율이 떨어지는 것도 금리를 낮추는 요인입니다.

▶김경원=최근 경제가 어려운 건 내수부진 때문입니다. 가계 빚이 너무 많아서죠. 부동산 상승과 양극화도 심각합니다. 모두가 지난 정부에서 밀어붙인 저금리와 통화 팽창의 부작용입니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경제를 고혈압 환자에 비유할 수 있는데 이 환자에게 설탕을 잔뜩 먹인 꼴입니다. 현 정부도 금리를 네 차례나 낮추는 등 같은 정책을 쓰고 있어 문제입니다. 저희가 분석해보니 금리를 낮추면 소비가 오히려 부진해집니다. 한번 금리를 내리면 최소한 6개월에서 길게는 3년까지 부동산값을 끌어올립니다. 정부가 집값을 잡기 위해 규제를 하면 거래가 끊겨 이삿짐센터 이용이나 가전제품 구매가 줄어 내수가 위축됩니다. 그러면 이를 금리 탓으로 보고 더 낮추는 악순환이 반복돼 온 겁니다.

▶사회=그래선지 부동산 급등을 막기 위해서라도 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 강해지고 있는데요.

▶정=반대합니다. 자금시장의 수요와 공급을 맞추는 게 금융의 우선적 기능이고 다른 목표는 부차적입니다. 풍부한 유동성이 간접적으로 부동산 시장을 부추기긴 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또 금리를 올리면 부동산과 관계없는 모든 사람이 영향을 받습니다. 공급 확대와 세금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지 금리로 접근하는 데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또 정책금리를 올린다 해서 시장금리가 그만큼 움직여 줄지도 의문입니다. 미국이 지난해부터 금리를 2%포인트 이상 올렸지만 장기금리는 별다른 영향을 받고 있지 않습니다.

▶조=지금은 동결할 때라고 봅니다. 하반기에도 경기회복세가 강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연말께 경기가 회복되고 물가가 안정되면 금리를 올려 부동자금 흡수에 나서는 게 바람직합니다. 부동산 과열을 막기 위한 것이라면 대출액 중 부동산 유입 비율 등 저금리의 영향을 정확히 분석한 뒤 올려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부채부담이 많은 중하위 계층과 중소기업에 줄 악영향이 더 크다면 올리지 않는 게 낫습니다.

▶김정호=저금리는 백해무익하지 않나 싶습니다. 저금리가 내수를 촉진하고 고용을 창출해 소득을 늘린다고 하지만 구체적으로 효과가 있었는지 입증하는 분석을 접하지 못했습니다. 저금리에 따른 시중 유동성은 설비투자보다는 부동산으로 움직이는 게 확실해 보입니다. 금리를 올려서라도 시장에 영향을 줘야 한다는 게 부동산 쪽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2000년 2분기부터 조사해보니 주택거래 건수와 금리, 통화량의 상관관계가 굉장히 밀접합니다. 금리가 낮아지고 통화량이 많을수록 시중자금이 설비투자보다 부동산으로 쏠리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현재 서울 강남은 집값의 20%, 다른 지역은 12~15%가 거품이라고 봅니다. 소득 양극화가 심각한 가운데 상위 3%에서 10%로 늘어난 부유층이 저금리로 돈을 꿔 집과 땅을 사기 때문입니다.

▶김경원=저금리가 경기는 못 살리고 부동산값만 올리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지금 금리를 올리면 부동산 과열을 식히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봅니다. 세계적으로 저금리 추세가 지속 가능한지도 의문입니다. 지금까진 중국이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하면서 값싼 상품을 공급해 물가 상승 압력을 낮춰왔지만 지난해부터 오히려 물가 상승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1980년대 부동산 거품 때 물가가 안 오른다고 방관하다가 큰코다친 일본의 경험을 참고해야 합니다. 2001년 물가가 안정돼 있었지만 부동산값이 오르자 신속하게 금리를 올려 선제 대응했던 호주에 비하면 우리는 너무 늦게 대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회=국내외 금리 역전은 어떻게 봐야되나요.

▶조=낙관적 시나리오가 진행될 가능성이 비관적 시나리오보다 높다고 봅니다. 국내외 금리 역전은 국내경제의 어려움을 해소하는 긍정적 측면이 있습니다. 일본은 해외 투자를 통해 과도한 엔화절상 압력을 해소한 경험이 있습니다. 무역수지 흑자가 쌓이고 있는 우리도 해외투자로 환율 하락을 완화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규모나 속도가 지나치지 않아야 합니다. 자금의 해외 유출로 국내 증시가 침체하고 부동자금의 흐름이 빨라지는 등 나쁜 영향을 줄 가능성에도 미리 대비해야 합니다.

▶김경원=금리 역전이 무서운 것은 국내에 들어와 있는 외국 자금이 빠져나가는 게 아니라 국내 자금이 유출될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해외 부동산 투자를 양성화하자는데 워싱턴.LA.상하이(上海) 집값은 한국사람이 다 올리고 있다고 합니다. 국내에서 쓰일 돈이 밖에 나가며 소비와 투자에 악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일본의 경우 해외투자가 엔화 약세 저지에 도움이 됐지만 금융회사들이 땅에 올인했다가 폭락하는 바람에 10년간 고생했습니다.

▶김정호=지난해 라스베이거스에 가보니 7개월 동안 집값이 두 배로 폭등했더군요. 한국 사람들이 7만 명 사는데 유학생을 통해 돈을 들여와 새 집을 사들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자산 유출 현상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조=금리가 역전됐으니 국내금리를 올리자는 주장도 부동산을 잡기 위해 올리자는 것만큼 부적절합니다. 금리가 성장잠재력을 반영한다고 보면 저금리는 미약한 경기회복세를 반영하고 있는 겁니다. 앞으로 경기가 살아나 물가상승 압력이 높아지면 자연스럽게 금리 역전 현상이 해소될 수 있을 겁니다. 해외투자는 물론 리스크가 큰 부동산 쪽으로 집중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부동산 거품 위험이 고조되고 있고 미국의 금리 인상에 따른 리스크도 커지고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유학생의 해외 부동산 취득 허용 등의 정책은 신중하게 결정해야 할 문제입니다. 리스크 관리에 약한 개인이 직접 투자하는 것보다는 금융회사를 통해 금융자산에 주로 투자하도록 해야 합니다. 한국투자공사 등 기관투자가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사회=금리 이외에 다른 방식으로 부동산 과열을 가라앉힐 방법이 있을까요.

▶정=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 금리보다는 유동성 조절로 대응하는 게 낫다고 봅니다. 예컨대 금융회사의 지급준비율 조정이나 환매조건부채권(RP).통안채.국고채를 통한 수급 조절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또 가산금리를 부과하거나 복수 대출 규제 등을 통해 선별적으로 유동성을 조절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김정호=미국에선 주택담보대출을 집값의 80%까지 내주지만 두 번째 집을 살 경우 40%로 낮춰 적용합니다. 정부가 시켜서가 아니고 부실을 염려한 은행들이 알아서 하는 겁니다. 국내 은행들이 그럴 수 있겠느냐에 대해선 회의적이지만 정부에서 개입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금리를 올려 시장에 신호를 보내고 유동성 조절을 병행하는 것도 좋은 방식입니다.

▶정=유동성 조절 정책에선 금융당국의 감독이 중요합니다. 은행들 보고 주택담보대출을 줄이라고 하면 담보가치가 높고 신용도가 높은 상위 고객보다 중산층과 서민 대출을 줄일 가능성이 큽니다. 이럴 경우 양극화가 더욱 심화될 것입니다. 감독 당국의 적절한 역할이 필요합니다.

정리=나현철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