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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호씨 소설『깊고 푸른 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이 달의 소설 중에는 최인호씨의『깊고 푸른 밤』(문예중앙봄호), 문순태씨의『달궁』(전작 장편), 전상국씨의『길』, (연작소설로 문예중앙·현대문학·세계의 문학에 분재), 이제하씨의『굴절』(현대문학) 등이 평론가들에 의해 주목되었다. 최인호씨의『깊고 푸른 밤』은 미국을 여행하는 한 작가와 그의 친구가 샌프란시스코에서 로스앤젤레스까지 자동차로 여행하면서 겪는 일들을 그리고 있다.
끝없이 이어지는 고속도로를 전속력으로 달리는 두 사람은 심한 좌절감에 빠져있다. 작가는 글쓰는 일에 회의를 느끼고 있고, 그의 친구는 대마초를 피웠다는 사실 때문에 사회로의 복귀가 어려워진 상황을 자포자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한밤중 고속도로에서 길을 잃는다. 차는 사고를 내고 멎는다. 적막만이 감도는 그 정지의 시간에 그들은 그들의 좌절에 관해 생각한다.
이 소설은 지식인의 좌절과 그 극복을 다루고 있다. 최씨는 이들을 통해 좌절감이 맹목으로 연결되는 위험을 떨쳐내려고 한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을 돌아보는 눈을 가져야한다는 것이 중요해진다.
이 소설에는 길의 이미지가 강력하게 부각되고 있다. 브레이크는 내버려두고 엑셀러레이터만 밟으며 달리는 길이다. 주인공들은 로스앤젤레스로 가는 l번 도로를 이렇게 달렸다. 그러나 알고 보니 그들은 엉뚱한 곳에 가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고 그들이 생각하게 하면서 이 소설은 끝맺고 있는데 음미할만하다.
문순태씨의『달궁』은 근대화에 밀려 파괴되어 가는 전통사회를 다룬 것이다.
달궁이란 농촌마을에 들이닥친 도시화의 여파는 공동사회의 모든 미덕을 앗아가 버릴 만큼 독소를 품은 것이었다. 그러한 환경 속에 변질되는 인간들의 내면은 비극적이다.
전상국씨의『길』연작은 6·25를 겪는 한 소년의 이야기다. 전씨는 6·25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썼지만 이 소설은 한국사람이면 누구나 절감할 수 있는 밀도로 그려져 있어 우리 소설이란 실감을 갖게 한다.
『굴절』은 이제하씨가 오랜만에 쓴 작품이다. 예술가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많이 썼는데 이번에도 화가를 다루었다. 전위미술가로 촉망받았던 사람이 먹고살기 위해 타락했다는 것인데 전위미술에 대한 묘사가 훌륭하다.<도움말주신분=김윤식·김치수·권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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