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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드러진 인물없이 추측만 만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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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소련의 다음번 지도자는 누구일까. 지난18년동안 소련을 이끌어온 공산당서기장겸 연방최고회의간부회의장「레오니드·일리이치·브레즈네프」의 중병설, 사망임박설, 혹은 5월 은퇴설이 나도는 가운데 소련전문가들은 세계최강의 군사대국이며 국제공산주의의 종주국인 이나라의 다음번 조타수로 누가 들어설까를 점치기에 바쁘다. 한데 지금의 크렘린에는 「브레즈네프」 본인말고는 뚜렷한 강자가 없기때문에 후계자를 짚어내는 일은 좀체 쉽지가않다.
『모든 정치국(공산당최고권력기구)위원들이 최소한 한가지씩은 결격사유를 지니고있다. 너무 늙었거나 젊지않으면 경력면에서 부족하다. 완벽한 후보는 한사람도 없다.』 존즈홉킨즈대 소련전문가 「드미트리·사임스」교수).
이런 인물부족현상은 「브레즈네프」 자신이 의도적으로 빚은 것이다. 그는 집권후 주위에 충성파들만 기용했다. 어느누구도 개인적 세력기반을 만드는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자신이 밀어낸 「흐루시초프」의 전철을 밟을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정치국원중 권력계승 경쟁의 선두주자로 꼽히는 사람들은 「콘스탄틴·체르넨코」(70), 「안드레이·키릴렌코」(75), 「유리·안드로포프」KGB의장(67), 「드미트리·우스티노프」국방장(73) 등이다.
▲「체르넨코」=3월말 「브레즈네프」가 입원한후 당과 정부의 일상업무를 지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체르넨코」는 땅딸막한 몸집의 순수 당료파다.
공장이나 농장관리나 지역행정의 경험은 전혀 없다. 게다가 교육도 변변히받지 못했고 연설솜씨도 신통찮다.
대신 그가 가진것은 왕성한 건강과 30년동안 「브레즈네프」와 맺어온 개인적인 연줄이다.
시베리아태생인 「체르넨코」는 2차대전직후 「브레즈네프」가 몰다비아지역책임자로 있을때 그의 선전책으로 일하면서 인연을 맺었다. 이후 「브레즈네프」가 권력의 사다리를 한계단 한계단씩 밟아오르는동안 「체르넨코」는 직속보좌관으로 마치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64년 「후루시초프」를 몰아내고 집권한 「브레즈네프」는 다음해 「체르넨코」를 당중앙위총무국책임자로 발탁했다.
70년대들어 「브레즈네프」의 건강이 악화되면서 개인적 친구이자 정치적보좌관으로서의 「체르넨코」의 영향력은 빠르게 커왔다.
「브레즈네프」의 여행때마다 수행하면서 심지어는 그가 의사의 지시대로 담배를 줄여피우도록 챙기기까지했다.
그같은 충직의 대가인지 76년 당중앙위서기로 승진했고 불과 2년뒤인 78년엔 정치국원이 됐다. 눈부신 출세속도였다.
지난2월 당내 제2인자 「수슬로프」가 죽은후 그의 기세는 더욱 솟아올랐다. 「수슬로프」가 맡았던 강력한 이데올로기부서를 휘어잡는가하면 장노 정치국원 「키릴렌코」를 제치고 새로운 제2인자로 부각되고있다.
그러나 「체르넨코」는 「브레즈네프」의 개인적 신임과 당료파의 소극적지지말고는 다져진 세력기반이 전혀 없다는게 치명적 약점이다.
게다가 다른 정권도전자들은 한결같이 그를 배척하는것으로 알려졌다.
▲「키릴렌코」=그는 그다지 영리하거나 남에게 호감을 주는 편은 못된다. 건강도 좋지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동맥경화증이 악화돼 운신을 못할지경이란 소문이다.
「브레즈네프」보다 생일이 석달빠른 「키릴렌코」는 항공기술자를 거쳐 당료로 투신했다. 50년 「브레즈네프」의 뒤를 이어 우크라이나의 드네프로페트로브스크 지구당 제1서기를 지냈고, 62년 정치국원이 된후 64년 「브레즈네프」「코시긴」등을 도와 「흐루시초프」 축출에 한몫했으며 66년부터는 당서기까지 겸하게 됐다.
『전형적인 보스형이며 무엇보다도 자신의 출세를 가장 중히 여기는 인물』이란 평을 듣는 그는 70년대들어 가장 유망한 후계자로 꼽히면서 「브레즈네프」가 없을때는 회의를 주재하는등 실질적인 제2인자 노릇을 해왔다. 정치국과 서기국에서 중공업과 당인사분야의 책임을 맡은 덕분에 군및 공업계와 당료층에 든든한 정치적 기반을 쌓을수 있었다.
▲「안드로포프」KGB(국가안보위원회)의장=소련정치국원치고는 「유리·안드로포프」는 견문도 넓고 두뇌회전이 빠르며 세련된 편이다. 독서나 현대미술에도 취미가 있으며 영어실력도 수준급이다.
이런 비프롤레타리아적 요소때문에 한때 크렘린의 일부 동료들로부터 자유주의적 성향을 띤 지식분자가 아니냐는 의심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경력은 전혀 다르다.
전신기사, 볼가강의 뱃사공을 거쳐 고향 카렐리아의 공산주의 청년동맹위원장을 지낸 그는 곧 모스크바로 진출, 56년 헝가리사태때는 주헝가리대사로 있으면서 소련군침공에 한몫 거들었다.
67년 비밀경찰 KGB의장에 임명된후 「안드로포프」는 반체체인사들에게 무자비한 탄압을 가해 활동을 위축시키는데 성공했으며 대서방 첩보활동도 강화했다.
최근 「브레즈네프」의 건강악화에 관한 소문과 그의 가족이 관련된 추문이나도는 것도 「안드로포프」의 정치책략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다.
이 견해에 따르면 「안드로포프」의 계산은 다음과같다.
「브레즈네프」의 병약함을 강조해 권위를 깎아내림으로써 그가 미는 「체르넨코」의 위치를 약화시키고, 5월의 중앙위총회에서 「체르넨코」가 노리는 「수술로프」의 자리, 즉 이데올로기 총책직을 자신이 맡는다는 얘기다.
그렇게되면 「비밀경찰두목」이란 깔끔하지못한 이미지를 어느정도 씻을 수 있고, 다음단계로 최고지도자도 바라볼수 있다.
그러나 「안드로포프」의 대권도전은 군부의 거센 반발에 부닥칠 가능성이 크다. 전통적으로 군부와 KGB는 그다지 사이가 좋은편은 아니다.
▲「우스티노프」국방상=권력승계 과정에서 뚜렷한 강자가 없을경우 군부의 입김은 상대적으로 세진다. 그리되면 국방상 「우스티노프」가 다크호스로 등장할 가능성도 없지않다.
볼가강변 쿠비세트출신인 「드미트리·우스티노프」는 처음 디젤기관공으로 일하다가 정식으로 공학을 공부해 기술자가 됐다. 2차대전때인 41년 레닌그라드의 한 공장장으로 있던 그는 「스탈린」에 의해 일약군비상으로 기용됐다. 불과 33세때였다.
76년 민간인인 그가 국방상에 임명됐을때 군일부에선 불만을 나타냈었다. 그러나 그후 6년동안 「우스티노프」는 군비확장에 열과 섬을 다해 군사력의 대미우위를 확고히 다지면서 군지도자들 사이에 폭넓은 지지기반을 구축했다.
하지만 「우스티노프」 역시 건강이 썩 좋지못해 지난해봄 당대회때는 은퇴설이 나돌 정도였다.
정치국의 웃세대들끼리 도저히 승부가 나지않는 경우 대권이 한세대를 건너뛰어 50대의 「어린」 정치국원이나 서기에게 넘어갈 확률이 전혀 없는것도 아니다. 소장층의 선두주자는 최연소 정치국원이자 농업담당서기인 「미하일·고르바체프」(51)다.
그러나 이들 소장과가 「브레즈네프」의 뒤를 바로 잇지는 못하리라는것이 일반적 견해다. 적어도 1∼2년 동안은 「브레즈네프」와 같은 세대의 정치국장노들이 2∼3인의 집단지도체제로 이끌어나가고, 그사이에 보다 젊은 지도자들이 대권경쟁을 벌이리라는 전망이다. 이같은 2단계권력승계는 소련에선 공식처럼 돼왔다. 「레닌」이나 「스탈린」이 죽은후, 그리고 「흐루시초프」가 밀려난 다음에도 강력한 새지도자가 등장하는데는 평균 3년이 걸렸던 것이다. <뉴스위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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