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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with] 이정은씨의 유아 놀이교사 '컴백'체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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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유효기간이 없다. 스스로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기회의 문은 언제고 다시 열리게 마련이니까. 대학 2학년 때 이른 결혼을 하며 유아교사의 꿈을 접었던 이정은(30)씨. 이제 두 아이의 엄마가 된 그가 못다 마친 전공에 다시 도전했다. 결혼 8년차 '프로 주부'의 '초보 교사' 도전기. week&과 유아교육 전문기업 프뢰벨 '은물학교'가 함께했다.

정리=김한별 기자<idstar@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알록달록 원색의 실내, 왁자지껄 소란스러운 아이들…. 8년 만의 컴백이지만 낯설지 않다. 옛날 보조교사로 아르바이트를 했던 곳도 느낌이 비슷했다. 하긴 그럴 수밖에. 아무리 시간이 흘렀다 해도 아이들은 아이들, 유치원은 유치원 아닌가. 긴장이 비로소 조금 풀리는 느낌이다.

일단 교재 다루는 법부터 배우기로 했다. 다양한 형태.색깔의 원목 블록을 조합하는 지능개발 놀이기구. 흔히 가베(Gabe), 즉 독일어로 선물이라고 불리는데 여기선 따로 은물(恩物)이라고 한단다. '신의 은혜로운 선물'이란 뜻이라나. 둘째 준엽(3)이 또래 애들이 갖고 놀면 딱이겠다 싶었는데, 이문숙(42) 선생님은 초등학생에게도 괜찮단다. "유아 때는 배우기만 하고, 배운 걸 제대로 표현하기 시작하는 건 일곱 살쯤부터 거든요." 귀가 솔깃해지는 얘기다. 사실 올해 첫째 준석(8)이를 초등학교에 보내놓고 고민이 참 많다. 뭔가 창의적인 교육을 시키고는 싶은데 딱 떨어지는 걸 아직 못 찾았기 때문이다. 다섯 살 터울인 두 아이의 교육과 놀이를 한번에 해결할 수만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텐데….

*** 수업준비 "어렵다, 어려워"

이어지는 본격적인 수업 준비. 애들 놀이라고 장난감 하나 던져주면 끝이겠거니 생각하면 착각이다. 원래 아이들은 집중력이 떨어지고 산만한 법. 흥미를 끌 만한 주제를 골라 미리 세심하게 준비하지 않는다면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이 선생님은 김밥 만들기 놀이를 해보잔다. 요 근래 TV의 영향으로 아이들도 요리에 대한 관심이 무척 많아졌다는 것이다. 거참, 이젠 바야흐로 유아교육도 유행을 타는 시대인가 보다.

김밥 만들기는 쉽고 간단했다. 김(색종이) 위에 흰 밥(휴지)을 깔고 색색의 막대 은물로 속을 채워 말아주면 끝이다. 노란색 은물은 단무지, 초록색은 시금치, 빨간색은 소시지다. 재밌는 건 휴지 같은 생활 소품을 교육에 적극 활용한다는 점. 이 선생님은 "놀이교재를 일일이 다 살 필요는 없다"고 강조한다. "주변에 있는 것들만 이리저리 활용해도 얼마든지 훌륭한 놀잇감을 만들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가령 두루마리 휴지 한 가지만 해도 활용법이 무궁무진하다. 오늘처럼 김밥 재료로 쓸 수도 있지만, 주름을 잡아 커튼이나 넥타이를 만들 수도 있다. 발로 차면 운동효과를 얻을 수도 있고, 한 칸씩 뜯어가며 수리감각을 키울 수도 있다. 역시 전문가다. 아이를 둘씩 기르면서도 미처 생각 못했던 아이디어들이 마구 쏟아진다.

다음은 '고참'들의 '수업 비법' 전수. 천방지축 꼬마들을 사로잡기 위한 특별한 노하우를 가르쳐 준단다. 이송희(29) 선생님은 "노래나 손동작 놀이로 수업을 시작하라"고 권한다. "일단 재밌어야 통한다"는 것. 하지만, 선생님이 앞에 나서서 일방적으로 수업을 이끄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A를 하자, B를 하자"보다는 "A는 어때요, B가 재밌지 않겠어요"가 낫다. 또 일단 질문을 하고 나면 반드시 모든 아이의 대답을 하나씩 다 들어줘야 한다. "그래? △△는 ○○라고 생각하는구나"하고 피드백까지 해주면 금상첨화다. 쉽지 않다. 질문 하나, 대답 하나 할 때마다 일일이 신경을 써야 한다니. 준석이.준엽이에게 괜히 미안한 생각도 든다. 집에선 조금만 말을 안 들어도 버럭 화를 내곤 했는데, 여기선 그저 '참고 또 참고'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 실습 학점 A+

'숙달된 조교'의 시범 구경을 마치고 시작된 진짜 내 수업 시간. 두 근 반 세 근 반 뛰는 가슴을 달래며 살며시 교실 문을 연다. 어른용 반만한 앙증맞은 의자, 그 위에 옹기종기 둘러앉은 초롱초롱한 10쌍의 어린 눈동자들. 8년의 시간을 돌고 돌아 처녀 시절 그리던 꿈과 재회하는 순간이다. 묘한 감동에 가슴이 벅차 오른다. 어느새 내 입에서 힘찬 인사가 흘러나왔다. "어린이 여러분, 너무너무 반가워요.…"

왕초보 교사의 컴백 무대 40분은 대성공이었다. 내내 두방망이질 친 가슴과는 달리 목소리는 차분했고 진행도 꽤 매끄러웠다. 반신반의하던 선생님들도 "목소리에 틀이 딱 잡혔다"는 둥 "진짜 교사가 돼볼 생각 없느냐"는 둥 칭찬 일색이다. 사실 욕심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아이들이 조금 더 크고 나면 복학해 못다 한 학업을 마치고 싶다. 졸업한 뒤에는 정식 유아교사를 해볼 생각도 있다.

하지만 다 나중 일이다. 지금 당장은 그저 준석이.준엽이 생각뿐이다. 집에 돌아가면 제일 먼저 아이들부터 불러 앉혀놓고 자랑을 할 거다. 애들아, 오늘 엄마가 멋지게 해냈단다. 그리고 꼭 품어주며 얘기할 거다. 다 너희 덕분이야. 사랑한다 애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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