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부식 숨을 곳이 없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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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의 주범 문부식과 그의 애인 김은숙은 숨을 곳이 없었다. 원주교구 성당에 은신 중이던 이들은 그들의 범행과 사진이 낱낱이 공개되고 수사의 손길이 시시각각으로 뻗치는 낌새를 느끼자 밤을 새우며 자수를 종용하는 최기식 신부의 간곡한 조언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이들은 수사당국에 넘겨질 때 모든 것을 체념한 듯 수사관이 내민 수갑에 두 손을 내밀었고 그 동안의 도피행각으로 초췌한 모습이었다.
문부식은 지난달 18일 하오 2시 미문화원 건물 건너편에서 불길이 치솟는 것을 확인, 곧바로 부민동 자취방으로 달려가 기다리고 있던 애인 김은숙과 함께 옷가지 등을 챙겨 도피 준비를 갖추었다.
문은 다음날인 19일 상오 태연히 학교에 들러 학생과장과 자신의 학적처리문제를 논의하고 학교 동정을 살핀 후 20일에는 방화조인 이미옥, 비라 살포 조인 최충언·박원식 등과 은밀히 만나 『오랫동안 만날 수 없으니 서로 몸조심하며 참자』고 다짐한 후 자취방으로 돌아갔다.
20일 하루종일 자취방에서 라디오 뉴스를 통해 경찰의 수사방향이 불온서클학생으로 좁혀지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신변에 위협을 느낀 문은 친형 문모씨(28)가 있는 서울로 달아날 것을 결심, 곧바로 자취방 주인 김지우씨(79)에게 살기 좋은 곳으로 떠난다며 보증금 10만원 중 7만5천원만을 받아 이불과 책 등을 챙겨 황급히 떠났다.
문은 시내 미장원에서 변장을 하기 위해 장발을 짧은 머리로 커트 한 후 곧바로 상경, 형 문씨가 종업원으로 일하는 서울 창천동 신라당구장에 나타났다.
형과 30분간 이야기를 나눈 후 당구장 옆에 붙어 있는 구석방에서 입고 있던 감색 바바리코트를 형이 준 콤비로 갈아입고 서울 시내를 돌아다녔다.
문은 서울시내 곳곳에 삼엄한 경계망이 펼쳐지고 검문검색이 강화됐음을 보고, 형으로부터 약간의 돈을 받아 변두리 여관방을 전전하다가 23일 다시 부산에 내려갔다.
범행 후 부산에서 숨어 지내던 애인 김을 만나 27일 수원 서울대 농대 근처에 있는 김의 동생 집에서 만날 것을 약속, 25일 다시 서울로 올라가 전철 편으로 수원에 잠입했다.
문은 애인 김의 동생 집에서 김과 합류, 강원도 원주 천주교구에 은신처를 옮기기로 했다. 문과 김은 29일 저녁 무렵 원주시 학성 1동 1023 가톨릭 원주교구주교관에 들어가 교구장 지학순 주교를 만나려했다. 그러나 지 주교는 동남아 여행 중이어서 다시 가톨릭 교육원으로 가 원주 교구사목 국장 최기식 신부를 만나 모든 것을 털어놓고 「보호」를 요청했다.
이들은 『버스를 타려 해도 무섭고 식당에 가기도 두렵다. 경찰이 우리를 쫓고 있다』며 숨겨 줄 것을 간청했다.
최 신부는 이들에게 숙소를 제공하고 자수할 것을 권유했다.
하룻밤을 자고 난 30일 아침 문과 김에게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졌다.
행동대원인 이미옥·최충언·박원식 등이 부산에서 검거되고 그들이 방화주범이란 사실과 함께 얼굴 사진까지 공개돼 더 이상 이곳에 숨어 있을 수도 없는 상황이 됐다.
이들의 범행을 전해들은 최 신부는 이날 상오 천주교 서울 한강성당 함세웅 신부를 찾아가 이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한 사실을 알렸으며 자수권유가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서로 나눴다.
1일 아침식사를 끝낸 문은 더 이상의 도피 행각을 포기했다. 최 신부에게 자수할 뜻을 밝히고 모 수사기관에 전화를 걸어 14일간의 고달픈 도피 행각에 종지부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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