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노 대통령, 다시 갈등의 정치로 몰고 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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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 초기에 보였던 갈등의 정치, 오기(傲氣)의 정치로 회귀하고 있다. 이런 모습은 주로 인사에서 드러난다. 최근 일부 개각과 공기업 사장 인사에서 총선 낙선자들을 집중 임명하는가 하면, 특정인을 입각시키기 위해 업무수행에 별 잘못이 없는 현역 장관을 갑자기 경질하는 무리수를 두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지역구도 극복이라는 목표를 실천하는 과정의 하나"라며 억지 명분을 만들고 있다.

윤광웅 국방부 장관을 유임시키기로 한 노 대통령의 결정도 단적인 사례다. 윤 장관이 물러나야 한다는 여론은 최전방 GP 총기난사 사건으로 8명의 장병이 목숨을 잃고, 휴전선 철책이 두 차례나 뚫린 데 대한 국민적 분노와 질책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런데도 노 대통령은 윤 장관을 유임시키려 했고, 한나라당이 국회에 해임건의안을 내자 "한나라당이 정국주도권을 잡기 위해 그런다"고 역공세를 펼쳤다. 그러나 지금의 문제는 국방부 장관에 대한 지휘책임.정치적 책임을 물어야 하는데 대통령이 유야무야 넘어가려는 데서 발생한 것이다. 이를 놓고 '주도권'운운하는 것은 여야 간.보혁 간 갈등을 조성해 논점을 흐리려 하는 것에 불과하다.

노 대통령은 또 "대통령제하에서는 국무위원 해임건의제는 없는 것"이라며 헌법을 탓하고 "(4.30) 재.보선 이후 여소야대 상황에서는 한나라당이 정국주도권을 갖고 있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현재 의석분포는 열린우리당이 49%인 146석을, 한나라당이 42%인 125석을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여기에 민노당과 민주당은 상대적으로 한나라당보다는 여당과 가깝다. 여당에 훨씬 우세한 정치 여건인 데도 "여소야대여서 집권당이 제대로 역할을 못하고 정책을 추진하기 어렵다"고 하소연하는 건 설득력이 없다. 대통령과 여당의 정치력이 부족하거나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지 반성하는 게 우선이다.

야당에 핑계를 대고 숫자로 밀어붙여서 윤 장관 해임건의안을 부결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로 인한 후유증은 전적으로 대통령과 여당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