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지방의원 유급화, 정당 공천 안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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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국회 정치개혁특위가 지방의원을 유급화하고 기초의원 후보자에 대해서는 정당 공천을 허용키로 결정했다. 앞으로 국회 법사위 심의와 본회의 통과 과정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원안대로 통과될 가능성이 아주 크다. 그러나 정개특위의 이런 결정은 풀뿌리 민주주의 실현이라는 지방자치제 본래의 취지와는 거리가 멀다. 여야 각 정당과 정치인들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벌이는 야합행위에 불과하다.

지방의원 유급화에는 엄청난 돈이 들어간다. 부단체장 수준의 급여를 달라는 지방의원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질 경우 매년 1800억원대의 예산이 추가로 들어간다. 시.도의원에겐 2~3급, 기초의원에겐 4~5급 공무원에 준하는 급여를 준다 해도 1000억원 이상의 국민세금이 필요하다. 정개특위가 유급화에 따른 재정부담을 걱정하는 척하며 기초의원 숫자를 20% 줄이기로 했지만, 이 또한 '혈세 낭비'란 비판을 피해 가려는 얄팍한 정치놀음일 뿐이다. 지방의원들의 반발과 소요경비 현실화 등의 이유로 지방의원의 '무보수 명예직' 규정을 삭제한 게 2003년인데 2년 만에 유급화까지 간 것을 보면, 조만간에 지방의원의 보좌관.비서관도 유급화하자고 나설 게 뻔하다.

돈 많은 지방 토호들이 지방의회를 장악하고 유능한 젊은 인력이 지방의원 후보로 나서지 않는 현실적 문제점이 분명히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인력 충원 구조를 개선하고 봉사문화를 확산하는 노력은 하지 않고 유급화가 만병통치약인 양 선전하는 것은 가당찮다. 더구나 시.군.구의원 후보자를 정당이 공천토록 한 것은 풀뿌리 민주주의마저 정당의 입김에 좌우되도록 개악하는 짓이다.

열린우리당 임채정 전 당의장과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기초단체장 정당 공천제의 문제점을 언급하며 폐지 내지는 재검토 필요성을 언급한 바 있다. 그런데 기초단체장은커녕 정당 공천을 금지했던 기초의원마저 정당에서 공천하겠다니 어떻게 된 일인가. 지방의원 유급화와 기초의원 정당 공천 허용은 지방의원들을 국회의원의 지역조직책으로 전락시킬 뿐이다. 전면 백지화해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