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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중·행담도 수사에 올인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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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요즘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얼굴이 TV 뉴스에 자주 등장한다. 지난 14일 새벽 귀국해 대검 중앙수사부에 출두하는 모습과 이틀 뒤 구속수감되는 장면이 그것이다. 수감 모습 등 자료화면을 되풀이 방송하면 피의자의 권익을 침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검찰 수사에 속도가 붙은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이런 와중에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는 행담도 의혹사건에 대한 수사를 본격화하고 있다. 한국도로공사 관계자 등 20여 명을 출국금지 조치하고 압수수색도 벌였다. 대검이 김대중 정권 실세들의 연관성을 추적 중이라면 서울중앙지검은 현 정권 실세들을 겨누고 있다. 김 전 회장의 해외 도피 등 과정에 당시 권력이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있고, 행담도 개발을 둘러싼 의혹의 중심에 청와대 인사들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우중씨의 혐의가 뭔가. 전 대우 임직원들에 대한 법원의 판결문만 봐도 그는 중범죄자다. 41조원의 분식회계를 한 데다 거짓 장부로 10조원대의 대출을 받았고, 200억 달러를 해외로 빼돌렸다는 것이다. 더구나 옛 대우그룹에 투입된 공적자금 30조원 가운데 10조원 이상은 회수가 어렵다는 전망이어서 고스란히 국민 부담으로 남게 됐다.

그러나 이는 이미 드러난 내용들이다. 국민은 베일에 가린 진실을 알고 싶어한다. 바로 권력과의 커넥션이다. 김씨는 해외 도피 중이던 2003년 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잠시 나가 있으라고 했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됐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가 몇 차례 입국을 시도했지만 정권 핵심들에 의해 저지됐다는 의혹도 제기된 상태다. 2001년 11월 프랑스 인터폴이 한국 경찰에 보내온 공문이 최근 공개됨으로써 이런 의혹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경찰이 전해준 공문에는 김씨의 소재 정보와 함께 송환 요청이 가능하다는 언급이 있었음에도 당시 검찰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프랑스와는 범죄인 인도협정이 체결돼 있지 않은 데다 김씨가 프랑스 국적을 취득해 송환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인터폴 공문에는 한국 사법 당국이 김씨의 송환을 요청할 수 있다고 또렷이 적혀 있었다는 점에서 석연치 않다. 당시 검찰 수뇌부나 수사진에 무슨 곡절이 있었는지 규명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이를 대충 덮어버린다면 그동안 천명해온 검찰의 정치적 중립 의지는 공염불이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제식구 감싸기'란 비난을 면키 어렵다.

행담도 의혹사건 수사 역시 검찰의 위상과 신뢰를 좌우할 수 있다. 감사원은 얼마 전 이 사건 감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문정인.정찬용.정태인씨 등 '청와대 3인방'이 부당 개입한 사실을 확인하고서도 이들을 수사 요청 대상에서 제외했다. 그러나 이들이 자신의 직무 범위를 넘어 무슨 근거로 행담도 개발을 S프로젝트의 시범사업으로 판단하고 지원했는지 의문이다. 또 도로공사가 법적 사업범위를 넘는 행담도 개발에 독자적 판단으로 뛰어들었다고 보기도 어렵다. 이런 의문들을 속 시원히 풀어줘야 할 책임이 검찰에 있다.

수사권 조정 문제로 검찰과 경찰이 갈등을 빚고 있다. 검.경 간부들이 앞다퉈 의원들 접촉에 나서는 등 국회 로비전도 치열하다고 한다. 이로 인해 정치권에 대한 수사 의지마저 흔들려서는 안 될 일이다. 검찰이 지금 '올인'해야 할 것은 정치권 로비가 아니라 김우중.행담도 수사다. 철저한 진상 규명만이 검찰의 존재 이유를 보여주는 것이자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얻는 첩경이다. 검찰 미래가 여기에 달렸다.

신성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