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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a 아시아] 중국은 지금 '스파이 전쟁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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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 홍콩의 한 대학생이 스파이 혐의로 체포된 청샹의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중국은 5월 싱가포르 스트레이츠 타임스 기자 청샹을 스파이 혐의로 체포했다. [아주주간]

중국이 세계 스파이 전쟁의 새로운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중국의 대외 첩보전이다. 그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이달 초 주(駐) 호주 시드니 총영사관에서 정무 영사(정보기관 파견 관료)로 일했던 천융린(陳用林.37)이 호주에 망명을 요청하면서다. 호주에서 4년간 정보요원으로 근무했던 그는 "중국 정부가 호주에만 1000여 명의 첩보원을 가동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곧이어 30대 중국 정보요원이 "중국은 미국.캐나다.호주 등을 1차 목표로 삼아 광범위한 첩보망을 구축했다"고 추가 폭로했다. 이들은 국가안전부 산하 '610 사무실'과 공안부 산하 26국을 해외 공작의 지휘부로 지목했다.

◆ 막강한 중국 첩보망=홍콩에선 1년 전에 "중국 대륙에서 홍콩으로 파견된 정보요원이 100명을 넘는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전직 정보기관 간부의 말을 인용해서다. 그러나 정통한 소식통들은 "정보요원과 그들의'망원(網員)'까지 합치면 첩보망은 수천 명 선이 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를 바탕으로 중국은 홍콩.마카오의 주요 기관과 인사에 대해 거미줄 같은 감시망을 깔아놓았다. 신임 행정 장관이 입주할 관저 곳곳에서 도청 장치가 발견되고 마카오 카지노에 갔다가 혼쭐이 난 중국 고위 관료가 하나둘이 아니다.

대만에선 중국 첩보를 맡고 있는 현역 장교를 포섭한 사례까지 드러났다. 지난 5월 대만 군 검찰은 중국에 군사기밀을 판매하거나 중국을 위해 스파이 활동을 한 17명을 구속했다. 주범은 중국 군의 동향과 군사훈련을 모니터하는 대만 국방부 전자통신실의 좡 소령이다. 미국에서 도입한 패트리엇 미사일 등의 자료를 돈을 받고 중국군에 넘겼다는 것이다. 중국 첩보망이 위력을 발휘하는 데는 인원 수도 큰 몫을 한다. 지구촌 곳곳에 포진한 화교(華僑).학자.유학생.특파원이 자원이다. 이들이 '중화주의(中華主義)'라는 이념 아래 망원 역할을 하는 것이다.

◆ 목표는 전방위 정보=중국은 냉전시대에 정치.군사.외교 분야에 첩보 역량을 집중시켰다. 중국과 국경을 맞댄 국가에서 진행되는 미국의 정치.외교.군사 동향은 특급 정보로 분류된다. 하지만 각국 간의 경제 전쟁이 치열해지면서 과학.기술.기업 정보 쪽에도 눈을 돌리고 있다. 홍콩 정부의 관계자는 "국가안전부와 함께 공안부.군(軍)이 방대한 해외 첩보망을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방첩.정보 수집 임무를 분야별로 나눠 맡고 있다. 지상 과제는 체제 위협 요인을 감시, 제거하는 것이다. 전임자인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 주석과 마찬가지로 후진타오(胡錦濤) 주석 역시 '정보 정치'를 중시하고 있다. ▶대만 군부 동향 ▶대만 독립론 지지자 ▶신장.시장 분리 독립 세력 ▶반체제.반정부 인사 ▶파룬궁(法輪功) 지지자 등이 우선 감시 대상이다.

그런 점에서 호주는 중국의 새로운 '정보 보고(寶庫)'나 마찬가지다. 호주가 미국과 군사 동맹을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만 해협과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할 경우 미군 지원 기지로 활용될 가능성도 크다. 한반도에 대한 중국 첩보망도 번뜩이고 있다. 한국은 주한 미군 관련 정보와 최첨단 산업 기술 등을 확보하기 위해 '1급 지역'으로 분류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미국의 대 중국 '스파이 전쟁'=미국은 중국을 겨냥해 수비와 공격을 모두 강화하고 있다. 중앙정보국(CIA)과 연방수사국(FBI)이 중국의 군사.첨단 과학기술 정보 수집 등과 관련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중국 관영 신화통신이 3월 11일 보도한 데서 그 일부를 엿볼 수 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중국.러시아.이란 등에 대한 '선제 스파이 전쟁'을 3월 초 승인하면서 벌어진 일들이다. 대외정보를 전담하는 CIA는 웹사이트를 통해 미국 시민권자이면서 중국의 군사.국가안전.경제 분야 연구 경력이 있는 석사 학위자로 중국어를 구사할 줄 아는 전문가를 모집했다. 국내 정보와 수사를 전담하는 FBI도 비슷한 시기에 중국 유학생과 방문 학자들을 대상으로 정보원을 뽑았다. FBI는 이미 올 초부터 전국 56개 지부에 산업정보 보호를 위한 방첩본부를 신설하고 특수요원 167명을 보강한 바 있다.

홍콩=이양수 특파원

미국·대만 대응은 …
유학생 포섭 언론사 도청도

중국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미국과 견줄 만한 국가로 평가받는다. 자연 중국을 엿보려는 외국의 물밑 움직임도 치열하다.

그 선두는 미국이다.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첩보 위성이나 첨단 감청 장치를 갖춘 정찰기를 이용하는 것이다. 미군의 대표적인 정찰기는 EP3E다.

일본 오키나와(沖繩) 공군 기지에서 발진해 남중국해와 동중국해의 해상 작전은 물론 중국 중남부의 군사 훈련이나 부대 이동 등을 샅샅이 집어 낸다.

대만 당국의 동의를 얻어 타이베이(臺北) 양밍(陽明) 산에 감청 기지도 가동 중이다. 일본도 2003년 첩보 위성 4기를 발사해 중국에 대한 본격적인 정보 수집에 나섰다.

사람을 통한 정보 수집 분야에선 단연 대만이 앞선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침투가 쉽기 때문이다. 미국은 자국 내 중국 유학생들을 스파이로 포섭한 뒤 중국으로 들여보내는 방법을 선호한다. 미국 정보 기관의 한 관계자는 "대부분의 중국 유학생은 생활고에 시달리기 때문에 금전을 앞세운 미국 첩보 기관의 '협조 제의'를 순순히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미국에 망명한 쉬자툰(許家屯) 전 신화(新華)통신 홍콩 분사 사장은 15일 "홍콩이 대중국 첩보망의 최대 거점"이라고 밝혔다.

그는 "외국 스파이들이 하도 들끓는 바람에 신화통신 홍콩 분사는 중국 국가안전부에 요청해 첨단 도청 방지 장치를 설치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베이징에 보고할 때 극히 중요한 사안일 경우 중국 선전으로 넘어가 전화했을 정도"라고 밝혔다.

진세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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