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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Sunday] 신(新) 인구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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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8호 31면

18세기 후반 경제학자 토머스 맬서스의 영향력은 대단했다. 서른두 살이던 1798년 익명으로 낸 『인구론』 초판은 오늘날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처럼 글로벌 화두가 됐다.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문구는 초판에만 등장하고 2판부터 삭제됐지만 반향이 컸다.

그는 구체적인 근거도 제시했다. 인구가 대략 25년마다 두 배 증가하므로 2세기 뒤 인구 대 생활물자 비율은 256대 9가 되고, 3세기 뒤에는 4096대 13이 되며, 2000년 뒤엔 계산이 불가능할 정도로 벌어진다는 식이다. 영국 철학자 토머스 칼라일이 경제학에 ‘음울한 학문’이라고 딱지를 붙인 것도 『인구론』을 읽고 나서였다.

맬서스가 떠난 지 180년째인 2014년 대한민국 사회에 새 인구론이 등장했다. “‘인’문대 졸업생의 ‘구’십 퍼센트는 ‘논’다”는 내용이다. 한국교육개발원(KEDI)이 지난 2월 국내 4년제 일반대 졸업생의 취업률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새 인구론이 숫자로 입증된다. 이공계 취업률은 해양공학과 77.4%, 기계공학과 71.7%인 반면 인문계는 국어국문학과 37.7%, 인문교육학과 25.8%에 그쳤다.

새 인구론이 심각한 건 그 이면에 ‘금융의 글로벌화’와 그로 인한 ‘주주 자본주의의 이식’ 같은 원리가 작동하고 있어서다. 금융 위기 때 열린 빗장 사이로 들어와 국내 기업의 대주주가 된 해외 자본은 단기 순익에만 열을 올린다. 성과가 불투명한 10~20년 뒤 미래 산업에 대한 투자는 관심 밖인 정도가 아니라 수익률 저하를 이유로 말리고 나선다. 용광로를 본 적도 없는 직원들에게 “제철소 건설에 실패하면 같이 ‘우향우’해 동해에 빠져 죽자”며 직원을 격려하던 고 박태준 포철 회장, “언제까지 일본 뒤만 쫓을 건가, 사재라도 털어서 반도체를 하겠다”며 참모들의 반대를 뿌리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같은 기업가 정신의 발휘가 구조적으로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다.

이공계 취업률이 그나마 유지되는 건 기업들이 보안을 이유로 연구개발(R&D) 센터를 국내에 짓고 있어서다. LG는 최근 서울 마곡에서 열린 R&D센터 기공식에서 전자·화학·에너지·바이오 분야 인력을 대거 채용하겠다고 밝혔다. 이공계생들에게 반가운 소식이겠으나 신기술과 기술 융합을 연구하는 R&D 센터에 문(文)·사(史)·철(哲) 전공자들은 설 곳이 없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확인됐다.

맬서스의 인구론은 오늘날 ‘당대의 일시적 인구 증가를 과대평가해 미래 예측에 실패한 이론’으로 평가받는다. 맬서스는 산업혁명 이후 소득이 늘면서 출산율이 낮아진 현상, 1900년대 초반의 ‘화학비료 혁명’ 등의 변수를 예측하지 못했다. 맬서스의 인구론처럼 2014년 대한민국의 새 인구론도 일시적 현상에 그치길 바란다. 기업가 정신과 경제 주체들의 활력 회복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비록 전망이 음울할지라도.

박태희 경제부문 기자 adonis55@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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