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남북회담 합의, 실천이 문제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4면

어제 끝난 제15차 남북 장관급 회담에서 양측은 12개 항의 합의를 담은 공동 보도문을 발표했다. 그 속엔 향후 남북 관계 활성화는 물론 북한 핵 문제 해결과 관련, 종전보다 진전된 내용이 포함돼 있어 주목된다.

남북은 "한반도 비핵화를 최종 목표로, 분위기가 마련되는 데 따라 대화의 방법으로 평화적 해결을 위한 실질적인 조치를 취해 나간다"는 데 합의했다. '한반도 비핵화'와 '실질적인 조치를 취한다'는 표현이 처음으로 들어간 것이다. 물론 이러한 문구가 곧 북한의 6자회담 참석을 의미한다고 볼 수는 없다. 북한 특유의 립서비스일 수도 있다. 그러나 미.중으로부터 6자회담 복귀 압력을 강하게 받고 있는 시점에서 북한이 이런 표현을 쓰는 데 동의한 것은 회담 참석 의지가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돼 기대를 갖게 한다.

남북은 북측 선박들의 제주해협 통과 허용을 비롯해 식량 제공, 장성급 회담 재개, 이산가족 면회소 착공 등도 합의했다. 특히 제16차 회담을 9월 백두산에서, 17차 회담을 12월 중에 남측 지역에서 열기로 함에 따라 장관급 회담 정례화에도 사실상 합의했다. 남북 관계를 한차원 끌어올리는 데 기여할 것으로 보여 긍정적이다.

문제는 이번 합의들이 앞으로 제대로 이행될 수 있느냐의 여부다. 2000년 정상회담 이후 북한이 합의 사안을 묵살한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이산가족 화상 상봉, 남북 직항로 등이 그것이다. 또 장성급 회담도 북한의 서해북방한계선 침법으로 유야무야된 적이 있다. 따라서 북한은 더 이상 이런 구태를 되풀이해선 안 된다. 특히 남측으로부터 비료.식량을 챙기고, 핵 문제는 미국과만 논의하겠다는 전략에 매달려서는 안 된다. 그럴 경우 남쪽의 지원에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명심하라.

정부도 유념할 대목이 있다. 6자회담은 열리지 않으면서 대북 지원은 확대되고 이벤트성 회담만 벌어지는 양상이 지속돼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그럴 경우 미.일과의 공조에서 불협화음을 유발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