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호메이니」는 고집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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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동경=신성순특파원】이란혁명이 일어난지 3년이 지났지만 이란의 최고지도자 「호메이니」옹(80) 의 인간으로서의 얼굴, 그리고 일상생활에 대해서는 그리 알려져 있지 않다.
2일 이란의 석간지 에데라토지는 「호메이니」옹의 둘째딸 「화리티·모스타화비」씨(42)와의 인터뷰를 통해 딸이 본 아버지「호메이니」옹의 모습을 소개했다.
딸 「모스타화비」씨는 현재 이란의 성도 콤시에 사는 상인의 아내다.
일본요미우리(독매)신문이 발췌, 소개한 내용을 옮긴다.
◇일상생활 = 내가 철이 들었을 때부터 아버지는 언제나 책에 둘러싸인 생활을 했다. 가끔 차를 들고 아버지방에 가면 책에 가려 아버지모습이 보이지 않을때도 있었다. 일과는 거의 변화가 없다. 매일 아침 7시반에 일어나고 아침식사는 거의 들지않은 채 독서를 하거나 손님을 만난다.
낮에는 점심전과 오후에 30분씩 산책, 밤에는TV나 라디오로 뉴스를 듣는다. 외국의 페르시아어 방송도 자주 듣는 편이다. 밤11시부터 11시반 사이에 취침하지만 오전2시경 다시 일어나 밝아올 무렵까지 밤기도를 계속한다.
기도가 끝나면 새벽에 다시 한두시간 눈을 붙인다.
◇성격 = 한번 안된다면 그것은 영원히 안된다는 것을 뜻한다. 가족들이 아무리 말해도 아버지의 생각을 바꿀 수는 없다.
이같은 초지일관하는 성격은 가족들에게 참기 힘든 어려움을 주는 경우도 있지만 아버지가 한번도 자기주강을 바꾸는 것을 본적이 없다.
아버지는 자신의 일은 스스로 해야한다는 생각을 갖고 그렇게한다. 예컨대 식사중 물을 마시고 싶으면 직접 가져온다. 내가 『아버지, 내가 갖다 드릴께요』하고 말해도 아버지는『내가 하면 안된다더냐』고 시키지 않는다.
아버지는 2남4녀의 자녀들을 언제나 평등하게 다룬다. 지금도 누가 형제중 가장 아버지마음에 드는지 모르고 있다.
이라크의 나자프에서 망명생활을 할 때 큰오빠「모스타화」가 암살됐다(75년).
나는 그날 밤중에 일어나 아버지를 살펴드린 일이 있는데 이 때 아버지는 온밤을 꼬박 자지 않고 기드를 계속했으며 가족들이 눈치채지 않게 울고 있었던 것을 지금도 기억한다.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고 자유에 맡겼으며 집안일에도 간섭하지 않지만 낭비를 해서는 안된다는 말은 가끔 했다.
◇가정생활 = 수일 전 테헤란으로 아버지를 방문했을 때 어머니가 고기를 사오라고 심부름을 시킨 일이 있다.
그러나 잘 알려진 일이지만 이란은 고기부족을 겪고 있으며 이 때문에 고기를 사올수가 없었다.
이때 아버지는 『고기같은 것 찾지 말라. 안먹어도 좋다』고 말했다. 나자프망명시절에는 더위 때문에 음식이 썩어서 곤란을 겪었다. 이때에도 아버지는 『사지 않으면 썩지도 않지』라고 말하곤 했다.
아버지「호메이니」옹은 이처럼 고집이세고 한번 마음먹은 일은 끝까지 하는 성격이지만 손자들을 대할 때는 다른 할아버지들과 조금도 다름없는 평범한 할아버지이고 손자들도 할아버지를 무척 따른다.
2살된 우리아들은 TV에「호메이니」옹의 얼굴이 비쳤다가 화면이 바뀌면 심통을 부릴 정도로 할아버지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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