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25년 전 받은 은혜 갚아야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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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 정미정씨(오른쪽)가 자신이 후원해온 강민정양(왼쪽)을 21일 서울 봉천동 펄벅재단 사무실에서 만나 기뻐하고 있다. 박종근 기자

지난해 세밑, 혼혈아동을 돕는 '펄벅재단'에 편지 한 통이 날아들었다.

"저도 25년 전 펄벅재단에서 도움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이제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됐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후원자가 되고 싶습니다."

이 편지의 주인공인 정미정(43.미국명 브렌다 샌더스)씨가 최근 한국을 찾았다. 자신이 6개월여 간 후원해온 강민정(17)양을 만나기 위해서다. 주한 미군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흑인계 혼혈인 그는 세 살 때 교통사고로 오른쪽 다리를 잃었다. 중학교 때쯤 아버지가 복무를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가며 잠시 연락이 끊기는 아픔도 겪었다. 홀어머니와 함께 어렵게 생활하던 그는 16세 때 겨우 아버지와 연락이 닿아 이민을 떠났다.

"전 행운아였어요."

21일 서울 봉천동의 펄벅재단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유창한 한국말로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혼혈에, 장애인인 여성으로서의 아픔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밝은 모습이었다.

"미군 부대가 있던 평택에 살았기 때문인지 친구들이 저를 놀리거나 멀리하지 않았어요. 펄벅재단에서 10년 이상 물질적인 도움도 받았죠. 게다가 자식을 잘 돌보지 않는 다른 미군 아버지들과 달리 착한 아버지를 둔 덕에 미국으로 가게 됐잖아요. 그러니 행운아죠."

그러나 정씨 역시 타인의 시선에서 완전히 자유롭진 못했다. "평택을 벗어나 서울 등 대도시로 가면 사람들이 저를 뚫어지게 쳐다봤어요. 한국말을 하면 이상하다는 눈초리를 보내고요. 슬펐죠."

그는 미국으로 건너간 뒤 열심히 공부해 텍사스주의 초등학교 교사가 됐다. 그러다 우연히 흑인계 혼혈인 강민정양이 주한 미군 아버지와 연락이 끊긴 후 홀어머니와 힘겹게 살고 있다는 신문기사를 보게 됐다.

"요즘도 혼혈아가 한국 사회에서 편견에 시달리며 살고 있다니 가슴이 아팠어요. 그래서 우선 물질적인 지원을 하기로 했죠. 돈이 모든 걸 해결해줄 수는 없지만 생활에 조금은 도움이 될테니까요."

미국에서 자립에 성공한 정씨는 "그러나 미국행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않는다"고 했다. "미국에서도 이방인 취급을 받기는 마찬가지예요. 어떻게 동양어를 저렇게 잘하나, 영어는 왜 어색하냐고 이상하게 보거든요."

그렇다면 혼혈아가 당당하게 살 길은 무얼까. 그는"낙천적인 성격을 갖는 게 중요하다"며 "무엇이든 긍정적으로 보면서 꿈을 갖고 살다 보면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미혼인 그는 앞으로 강민정양 외에 더 많은 혼혈아의 '엄마'가 돼줄 계획이다.

백일현 기자 <keysme@joongang.co.kr>
사진=박종근 기자 <jokepark@joongang.co.kr>

*** 바로잡습니다

6월 22일자 29면 '25년 전 받은 은혜 갚아야죠' 기사의 작은 제목 '같은 처지 혼혈인 돕는 미국 입양인 정미정씨' 가운데 '미국 입양인'을 '재미동포'로 바로잡습니다. 정씨는 미국으로 입양된 적이 없으며, 미국인 아버지를 따라 한국인 어머니와 함께 이민을 갔습니다. 정씨께 사과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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