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정 당긴 중단으로 교계에 큰 파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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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교사의 사회참여」문제를 둘러싼 정부측과 기독교교회 협의회(NCC)측의 토론대결(?)이 뜨거운 파문과 함께 교계 안팎의 많은 화제를 모으고 있다. 파문의 발단은 NCC주최 이념문제협의회(11∼13일·서울 영동성결교 회관)가 이규호 문교장관의 주제 발표 후 돌연 일정을 하루 앞당겨 중단해버린 가운데 이 장관의 판정승(?)이라는 평판이 나옴으로써 비롯됐다.
주최측은 협의회의 「돌연 중단」이유를 『당국이 대화분위기 조성에 무성의하고 일부 강사의 발표를 방해함으로써 더 이상의 진행이 무의미하다고 판단, 모임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같은 이유보다는 이 장관의 발제 강연내용이 모임의 분위기를 압도해버린 것이 끝내 중단의 돌풍까지를 몰아온 직접 배경인 것으로 알려졌다.
협의회를 주관한 NCC교회·사회위원회는 이 장관이 당초 요청했던 주제인 『한국의 역사현실과 이데올로기』와는 전혀 다른 내용을 담은 『기독교 이름 아래서의 정치참여에 대한 비관적 고찰』이라는 부제로 「견강부회」의 논리를 전개했다고 비난하기도 한다.
어쨌든 이 이념문제를 협의회는 적어도 외형상으론 NCC측이 패배의 상처를 입은 반면 이 장관에게는 「이데올로기 장관」이라는 별명에 또 하나의 훈장을 안겨준 셈이었다.
이 문제는 주최측의 책임과 대책이 강력히 촉구되는 가운데 26일의 NCC총회에서도 거론될 것으로 보여 더욱 관심을 모으고 있다.
김관석 기독교방송 사장과 오충일 목사가 각각 의원장 및 서기를 맡고 있는 NCC교회 사회위원회는 23일 대책회의를 갖고 이념문제 협의회가 유례없는 중단 사태를 빚은 데 대한 주최측의 입장을 밝히는 성명서률 발표, 사례보고 자료가 당국에 의해 압수된 점등을 지적키로 했다.
한편 협의회 속개·지면논전·TV공개토론을 통해 이 장관과의 충분한 대화를 더 갖도록 한다는 대책도 마련했다. 이에 대한 이 장관의 입장은 시간이 허락하는 한 기꺼이 응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토론회 주최측의 원래 의도가 승부를 건 대결의식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다만 최근 기독교의 하나님 선교로 야기된 사회문제를 정부측과 함께 분석·비판하고 자체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교회의 공동체적 삶을 모색하려는 것이었다.
자유주의 신학 노선을 따르는 교회들의 연합기관인 NCC가 이례적으로 정부측 인사들까지 초청,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 방안을 모색하려했던 이 토론회의 주제는 『한국에 있어서 기독교와 이데올로기』였다. 이 같은 주제는 70년대 이후 교회의 인권운동·노동자 의식화 등을 내용으로 한 사회구원의 하나님 선교가 민감한 관심과 이목을 집중시켜 왔다는 점에서 당초부터 많은 사람들의 주의를 끌기에 충분했다.
당국과 교회사이에 긴장의 대립감조차 없지 않던 이 문제는 「하나님 선교」를 정치신학용 공신 학으로 규정하는 비판에 대해 교회의 사회구원이야말로 기독교 최우선의 소명이라는 주장이 날카롭게 맞서면서 갈등을 빚어왔다.
이번 NCC의 이념문제 협의회는 평행선만을 달리던 교회와 정부당국이 교회의 사회 참여문제를 놓고 자리를 같이한 최초의 토론광장이었다는 점에서도 앞으로의 귀추가 더욱 주목된다.
이 장관은 NCC이념문제 협의회 주제발표에서 『교회의 인권문제가 가난한 자를 위한 인권투쟁이라면 인간다운 삶을 누릴 빈곤 극복에 우선 앞장 서 달라』고 촉구하면서 『현실은 유토피아가 아니기 때문에 인권개념도 역사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교회측의 서남동 박사(전 연세대교수)는 이 장관에 이은 주제발표에서 『민중의 삶의 현장과 깊은 관계 속에서 참여와 연대감을 갖는 것이 민중 신학의 기본 요건』이라는 자신의 민중 신학론을 전개하고 『피지배자로서의 민중을 41번이나 언급한 「마가복음」이야말로 「하늘나라가 가까웠다」는 예수의 첫 설교를 담은 민중의 복음서』라고 역설했다.
이 같은 주제발표를 통한 토론의 대화도 이장관의 압도에 긴급대응으로 예정에 없던 서박사를 내세웠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있어 NCC측의 상처를 더욱 아프게 하고 있다. 그러나 주최측은 서박사를 원래의 프로그램에는 넣지 않았지만 협의회 첫날 참석자들의 여론에 따라 그의 민중신학 발표를 확정했다는 것이다.
일부 강사의 발표 방해는 오충일 목사의 인권문제 사례발표내용 인쇄물이 압류 당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국은 오 목사의 발표내용이 최종 판결 전 어떠한 영향을 미쳐서도 안 되는 재판계류중인 사건들이기 때문에 만류했지만 끝내 자신의 원고로 발표를 했다는 것이다.
패자의 변과 승자의 여유가 뒤엉킨 NCC의 이념문제 협의회는 모처럼의 기대와는 달리 파문으로 끝나고만 「불명예」가 널리 회고하는 가운데 앞으로 이 문제가 어떻게 마무리지어질지 주목된다. <이은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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